4·10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부의 물가 안정 요구에 유통·식품 업계가 잇따라 가격 인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 동참 기조가 인위적인 가격 통제로 굳어져 이에 따른 역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단기적인 물가 인하가 향후 가파른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을 시작으로 대한제분과 삼양사도 이날부터 밀가루 가격을 내린다. 삼양사는 소비자용 중력분 1㎏, 3㎏ 제품 가격을 평균 6% 인하한다. 대한제분도 소비자용 밀가루 1㎏, 2㎏, 2.5㎏, 3㎏ 등 제품 가격을 내린다. 오뚜기도 식용유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하하기로 했다.
제조사에 따라 유통사들도 가격 인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29일 CJ제일제당의 밀가루 제품 가격을 낮춘 데 이어 대한제분 밀가루 가격을 내린다. 여기에 이마트 자체 할인을 더해 오는 5월 2일까지 일부 밀가루 제품을 최저가로 판매한다.
홈플러스도 1일부터 3개 업체 총 6품목의 밀가루 가격을 평균 4.4% 내린다. 삼양사 큐원 중력분 3㎏는 5190원에서 4650원으로, CJ 중력분 2.5㎏는 4600원에서 4420원으로 가격을 인하한다.
편의점 CU와 GS25는 CJ 백설 중력밀가루(1㎏) 판매가를 2600원에서 2500원으로 100원(3.8%) 내렸다.
세븐일레븐은 오는 3일부터 CJ 백설다목적밀가루(1㎏) 가격을 2600원에서 2500원으로 인하한다.
이는 정부가 식품업계에 재료 가격 하락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것을 권고한 데 따른 조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해 2월 곡물 가격 지수는 113.8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3월(170.1) 대비 33.1% 급감했다. 팜유, 대두유 등 유지류 가격지수도 2022년 3월 251.8로 고점을 찍은 뒤 지난 2월 120.9로 떨어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가격 인하를 두고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협조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밀가루의 경우 원료인 수입산 원맥의 가격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에 비해 원맥 가격이 내려간 부분이 작용한 것”이라며 “정부의 가격 안정화 기조에 공감하고 있으며 적극 동참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 체감도가 있기 때문에 총선 전후로 가격을 변동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라며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당분간은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정부의 물가 인하 정책이 강제성을 띄어선 안된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총선 전후를 떠나서 정부에서 단기적인 물가 정책을 펼치는 건 환영할 일이나 강제성이 들어가게 되면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또다시 하나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격 인하 정책에 따른 피해 여부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라며 “무조건 밀어붙이기 식보단 근본적인 물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전방위적인 정책에도 물가가 쉽사리 둔화세를 보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국제유가와 환율이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4월 이후 물가 상승률이 더 크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정부는 1500억원의 긴급 안정 자금을 투입해 납품단가 지원 품목 확대와 유통업체 할인율 확대, 정부 비축물량 방출 등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축수산물 가격안정 대책이 3월 중순 이후로 본격 시행되면서 소비자 가격 하락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며 “4월에도 물가안정 노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