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들어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잇따르자 산림 당국은 산불재난위기경보를 두 번째로 높은 '경계' 단계로 올렸다. 당분간 메마른 날씨 속에 바람도 지역에 따라 강하게 불 것으로 보여 대형 산불 위험도 커지고 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동해안 대형 산불의 원인, 산불 피해지 복구 방안을 두고 임도와 숲가꾸기, 조림복원 방식에 대해 사회적 찬반양론이 뜨겁다. 쿠키뉴스는 드론 등 다양한 촬영장비와 함께 4월 초 기후재난연구소 최병성 상임대표(62)와 함께 밀양, 울진, 삼척, 강릉, 고성 등 산불피해지와 복원지를 돌아봤다. 활엽수가 잎을 틔워 벌거벗은 복구현장과 대비되는 4월 하순 경 2차 취재에 들어간다.
본지는 산림청 및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3회에 걸쳐 온·오프라인에 기사와 사진, 동영상을 심도 있게 게재한다.
1회: 산림 재난 부르는 산불 복원
2회: 대형 산불의 원인 “숲가꾸기 vs 숲죽이기”
3회: 산불 후 조림 “자연 복원 vs 조림복원”
[1회. 산림 재난 부르는 산불 복원]
-벌목위해 중장비 투입, 토양 마구 파헤쳐져
-산불 겨울·봄 집중 패턴 바뀌어 일년내내
-산불 규모 키우는 환경 조성
-대형 산불 대량 탄소배출 악순환
‘산불 시즌’이 사라졌다
과거 봄철에 강한 바람과 함께 온 산을 태웠던 대형 산불이 최근 들어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확장되면서 일 년 내내 산불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마의 위력이 날로 거세지면서 기후위기 시대, 산불은 전쟁만큼이나 위협적이다.
밀양산불 복원현장을 가다
사철 새 옷을 갈아입던 산과 계곡이 민둥산이 되었다. 나무는 불에 탄 뒤 모두 베어져 나가고 온 산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곳곳이 움푹 움푹 패어졌다. 맨살을 드러낸 붉은 황토 위에는 언제 자라 다시 푸른 숲을 이룰까 싶은 묘목들이 줄지어 꼽혀있다. 식목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찾은 밀양 산불(2022년 5월 31일 발생) 복원 현장이다.
산림당국은 산불에 타 죽은 나무들로 인해 발생할 재난을 예방한다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검게 불탄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중장비로 온 산을 헤집으며 벌목한 나무들을 산 아래로 끌어내렸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무 뿐 아니라 화마에 크게 상처를 입은 토양은 포클레인 등 각종 중장비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찢기며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산불 후 발생할지도 모를 긴급 재난에 대비한 목적이라지만 벌목이 오히려 심각한 산림 재난을 초래하는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벌목과 동시에 골짜기 아래는 산사태로 인한 재난을 막기 위해 곳곳에 사방댐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사방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집중호우에 토사가 일시에 밀려 내려오면 감당하기 어려워보였다.
산불 복구는 산불 피해목을 효율적으로 잘라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식생 여건 등 주변 환경 분석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2019년 강릉 옥계 산불 피해지의 경우 침식 위험도가 벌목 뒤 3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산불 피해지역에 충분한 조사 없이 서둘러서 중장비가 들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나무가 사라지고 경사진 산지에는 이미 곳곳이 패여 나가 위태로운 현장이 많았다. 취재에 동행한 최 상임대표와 함께 지난 해 홍수로 깊게 패여 나간 곳을 나무뿌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가 보았다. 무려 3m가 넘게 토사가 쓸려나가며 골짜기가 형성된 곳에서 양 옆과 위를 바라보니 언제든 흙무덤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협이 느껴졌다. 산 아래 건설한 사방댐이 산사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음을 다시한번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렇게 조림을 위해 죽은 나무들은 물론이지만 살아있는 나무들까지 한 번에 베어낼 경우 산사태 이외에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최 상임대표는 “산림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하고 있는 곳은 나무(17%)가 아니라 토양(72%)이다. 현재와 같은 인공조림 방식으로 산불 후 복원을 한다면 토양에 저장된 탄소를 배출시켜 기후위기를 조장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 피해목을 벌채하더라도 수목의 산사태 저감효과인 뿌리는 남아서 수직근에 의한 말뚝효과 및 수평근의 그물효과 등 토양보강효과를 유지한다”면서 “벌채목의 뿌리가 토양보강효과가 감소되기 전에 지표식생 유도 및 사방사업을 통해서 호우 시 토사유출·산사태 피해 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 및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숲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여년 밖에 안 된다. 이 시기부터 척박한 소나무 숲에 양분이 조금씩 쌓이자 소나무가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시작하면서 활엽수가 서서히 우점종(優占種)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불이 발생하면 조금 쌓인 양분에 더해져서 불에 탄 나무들이 숯이 되어 토양에 남게 된다. 이들에 의해 거의 모든 산불 지역에서는 산불에 강한 활엽수가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불탄 나무를 베어 숲 밖으로 옮기고 조림하는 과정에서 중장비가 동원되는 등 인간의 간섭에 의해 표층에 쌓인 많은 유기물이 유실된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척박한 곳에 소나무 위주로 조림하더라도 대부분 지역에서 생명력 강한 활엽수가 자연 발생하고 소나무를 위해 활엽수는 또다시 잘려나간다.
부산대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는 “산불은 한꺼번에 숲의 가치를 잃게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과거보다 훨씬 건강한 숲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한다”면서 “하지만 무조건적 모두베기와 조림방식을 전제로 한 산불 피해지 복원방식 때문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밀양산불 왜 오래 갔을까?
주로 봄철에 발생한 타 지역의 산불과 달리 밀양산불이 초여름에 발생해 3일씩이나 지속된 이유가 있다. 송이버섯을 따기 위해 소나무만 남기고 하층 식생을 모두 잘라내 송이 숲이 산불 피해를 확산 시킨 것이다. 하지만 산림당국은 “산불피해지역에 소나무가 잘 자라고 대부분 산주가 소득 작목인 송이생산을 위해 소나무 심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 번 불에 탄 송이 숲에서는 다시 송이가 자라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산림 당국은 “산불피해지역 중 소나무가 전소한 곳은 송이균이 사멸해 영원히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1996년 강원도 고성지역의 송이산 산불피해지역에 1997년 소나무림을 조성하고 2007년 송이감염묘를 옮겨 심어 2023년 첫 송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재선충 예방을 위해 소나무를 잘라 약을 투입하고 쌓아놓은 소나무 더미들도 산불을 키우고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최 상임대표는 “소나무 군락 중앙의 임도가 바람길이 되어 임도를 따라 급속히 산불이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밀양 산불 현장은 우리에게 산불에 대한 많은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산불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발생한 산불이 왜 많은 피해를 가져오는 대형 산불이 되는가이다. 매년 봄이 되면 정부와 많은 단체들이 나무를 심는다. 오늘도 산림청은 우리 숲은 늙어 탄소 습수 능력이 떨어진다며 탄소 흡수 능력이 더 나은 어린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불로부터 산림을 보전하는 것이다. 대형 산불이 한번 발생하면 수십 년간 심은 나무보다 더 많은 면적의 나무들이 일시에 불타 사라지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자란 엄청나게 많은 나무들이 일시에 불타 죽으며 다량의 탄소를 뿜어낸다. 탄소 흡수원이 사라지고 불 타 죽은 나무를 베어내는 과정에 또다시 엄청난 양의 토양 탄소를 배출시키기 때문이다.
잘 보존된 숲은 온실가스를 억제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여주지만 벌목과 산불로 황폐화된 경우 나무에 저장된 탄소가 분출돼 지구온난화에 악영항을 미칠 수밖에 없다.
- 올 여름 괜찮을까?
산불 복원 현장은 우리에게 산불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산불로 훼손된 산림생태계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산불에 강한 숲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자연조림과 식재조림, 숲가꾸기는 올바르게 이뤄지고 있는지, 임도의 효용성은, 숲의 관리목표와 방식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져야한다.
환경보호론자와 정부의 산림 정책에 관해 찬반양론이 분분하지만 기자가 돌아본 산불 재난 현장은 우리의 푸르렀던 큰 숲이 속살을 들어낸 체 곳곳이 패이고 찢겨 신음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부터 제법 많이 내린 눈비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산림 복구 현장이 과연 올 여름 집중호우라도 내린다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2023년 여름 모두베기 벌목과 임도개설, 송전탑 건설 등 인위적 교란으로 대형 산사태가 발생해 재산은 물론 인명피해가 컸던 경북 예천지역의 사고 현장이 떠올랐다.
밀양·울진·삼척·강릉‧고성=글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 최병성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