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몰래 유령 계좌 1000여개를 만들어 중징계 받은 DGB대구은행이 시중은행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홍콩 ELS 사태를 비롯, 금융사 내부통제를 그간 강조해 온 금융당국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뿐더러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과점 카르텔’ 지적에 호응하기 위해 금융위가 무리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온다.
직원 100여명이 몰래 증권계좌 개설…피해 고객 1547명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대구은행 금융사고 제재 수위를 ‘기관경고’로 결정하고 이를 금융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 제재는 △등록·인가 취소 △영업정지 △시정명령 △기관경고 △기관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금융위는 “대구은행의 위반내용이 은행법 및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기관경고 사유에 해당하지만, 보다 무거운 제재인 금융실명법상 업무 일부 정지 3개월로 병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금감원은 대구은행에 대한 수시검사 결과 56개 영업점의 직원 111명이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고객의 정당한 실지명의 확인 등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은행 예금 연계 증권계좌를 개설한 사실을 확인했다. 몰래 계좌가 개설된 고객은 총 1547명, 계좌는 1657건에 달한다. 증권계좌 개설을 통해 받는 수수료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은행 직원들은 이를 위해 서류를 위조했고 고객에게 알림 문자가 가지 않도록 수신 거절 설정도 했다. 대구은행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금감원에 늑장 보고하는 등 미흡한 대응도 드러났다. 금융기관은 금융실명법 위반 발생 시 지체 없이 금감원에 보고해야 한다.
시중은행 추진은 그대로…금융위 “대주주 문제 아닌 임직원 문제라서”
이번 중징계에도 대구은행 시중은행 전환을 차질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시중은행 전환 인가 심사는 대주주 적격성을 중심으로 보는데, 불법계좌 개설은 대주주가 아닌 임직원이 벌인 금융사고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다 해도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한 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이라는 특혜를 받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이 되면 지금보다 더 싼 가격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또 기존처럼 특정 지역을 벗어나 전국에 점포를 내고 영업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국회에서도 이같은 지적이 나왔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내부 통제 장치가 엉터리인 은행에 대해서 시중은행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냐”며 “제재 결과도 나오기 전에 시중은행 전환을 서두르는 건 총선을 염두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여기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법률적으로 전환 신청 자체는 (금융감독원의) 검사 진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불이익보다 더 큰 혜택…시중은행 갯수 늘리기에 집착”
정부는 은행업 과점 해소와 경쟁 촉진 방안으로, 기존 금융회사의 시중은행 전환을 적극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6개 지방은행 중 전환 요건을 갖춘 곳은 대구은행뿐이었다. 시중은행 늘리기는 윤 대통령 주문에 따른 조처기에,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성과 내기에 급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불이익보다 더 큰 혜택을 주면 이걸 징계라고 말할 수 있나. 금융당국이 자기모순에 빠졌다고 본다”며 “시중은행 경쟁력을 높이려 인허가를 열어줬다면 좋은 은행이 들어오는 게 맞다. 결국 대통령 말 한마디 때문 아닌가. 징계는 의미 없고 정부에만 잘 보이면 된다는 시그널을 금융권에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절차상 문제는 없을 지 몰라도 대구은행이 시중은행 인가를 받기 위한 요건을 만족하지 못했다고 본다”며 “당국에서 시중은행 갯수 늘리기에 집착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영진은 몰랐을 수도 있지만 고객 몰래 천 여개 계좌를 만든 건 악질적 금융범죄”라며 “분명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금융위는 업무정지 중징계까지 받은 금융사를 시중은행으로 전환할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