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의료·헬스케어 서비스도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면서 효율적이고 선제적인 진료, 치료, 관리가 가능한 세상을 열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 DH)는 어디까지 손을 뻗칠 수 있을까. 쿠키뉴스는 산업 곳곳에 포진해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들을 마주하고, 혁신을 말하는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알아본다. [편집자주]
질문을 하면 획일적 답변을 주던 인공지능(AI)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의견을 자유자재로 전하는 생성형 AI가 주목받는다. 이를 가능하게 한 기술이 바로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이다.
이는 병원 현장을 벗어나 개인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도 쓰인다. 진료·검진 기록, 생체 데이터, 생활 습관 등을 종합해 향후 예측되는 질병이나 건강 상태 등을 미리 알려주는 고차원 헬스케어 서비스가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료 분야에서 특화된 LLM 기술을 구현하고 사업화하기까지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많다.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의료 데이터가 정부의 제도적 장치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예방의학과 의사이자 빅데이터 산업 전문가인 이종근 미소정보기술 총괄본부장을 만나 의료 AI와 LLM 기술의 역할과 활용에 대해 들어봤다.
Q. LLM 기술은 무엇이며 의료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챗 GPT(chatGPT)를 떠올려 보자. LLM 기술은 질문을 입력하면 답을 주는 대량의 정보를 인지한 인공지능 모델이다. 최근 LLM 기반 AI가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의료 분야에서도 정확성을 입증했다.
의료 임상 현장에서는 주로 만성질환이나 건강검진 관련 데이터를 해석하고 진단하는 역할을 한다. 뷰노, 루닛 등 의료기기 기업들이 AI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도 활용한다. 다만 병원별로 데이터를 다른 방식으로 입력하다보니 LLM 학습 정보가 표준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중증·급성질환 환자에게 적용할 땐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Q. 국내외 헬스케어 산업에서 LLM의 발전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에는 재주가 많은 인재들이 많다. 기술력 자체로는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는다. 단 아직 의료에 특화된 LLM 전문 기업이 없다.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을 나눌 때는 크게 의료와 헬스 분야로 둘 수 있다. 앞서 말한 뷰노나 루닛 같은 진단보조 AI 기업들은 ‘디지털 의료’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엔 의료진, 개발업체, 환자단체, 병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어 개발이나 상용화가 쉽지 않다. 또 건강보험 수가 장벽이 높아 운영 자체가 어렵다. 반면 질환이나 건강 관리에 중점을 둔 헬스 사업은 의료 분야에 비해 진입이 쉬워 네이버나 카카오브레인 같은 IT 중견기업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하지만 의료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최적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의료 데이터는 해당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국내 LLM 산업이 성장하려면 IT, 의료 등 다양한 기업들 간 파트너십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는 속도 대비 투자가 적은 것도 문제다. 글로벌 시장처럼 커지려면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Q. 기대가 되는 LLM 기술로는 어떤 게 있나.
LLM과 디지털 트윈을 접목한 ‘라이프 케어 트윈’ 기술이 곧 등장할 예정이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공간에 실물과 똑같은 물체를 만들어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에 거대 지식창고인 LLM을 더하면 나의 몸 상태와 똑같이 닮은 ‘아바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
LLM에는 스마트폰, 스마트워치를 통해 수집되는 생활 습관, 바이오리듬, 혈압·맥박 등 생체신호, 건강검진 및 진료 기록 등이 담긴다. 향후 개인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아바타 상태가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 가령 30분간 운동을 했을 때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얼마나 줄었는지 아바타를 통해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장기별 질병 발생 위험성도 평가할 수 있다. 또 다른 세계 속의 ‘나’로 건강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면에서 멀티버스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획기적 건강 관리, 예방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Q. 미래에는 어떤 AI 기술이 주목 받을까.
라이프 케어와 사물인터넷(IoT)의 융합이 핵심 기술로 떠오를 전망이다. 과거에 ‘스마트워치 하나로 혈압, 호흡, 심장리듬, 운동기능 등 다양한 데이터들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미래 기술로 여겨졌던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스마트 TV, 체성분을 측정하는 스마트 저울, 몸에 부착만 해도 혈당·심전도를 보여주는 웨어러블 기기,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홈캠 등도 이미 시장에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러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들이 클라우드 서버라는 하나의 데이터 공간으로 모이고 학습 기술(머신러닝)을 통해 개인 맞춤형 LLM이 형성된다. 생활하는 모든 순간이 디지털 기록으로 남고, 이를 통해 질병을 예측한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도움을 요청하고 대처할 수 있는 SF영화 같은 삶이 머지않았다.
Q. 의료 AI 산업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먼저 디지털 의료가 아닌 디지털 헬스를 위한 법들이 제정돼야 한다. 예를 들어 원격진료의 경우 의사가 진단하고 처방하는 의료 영역에서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건강 관리 측면의 원격 시스템은 국민 의료 수준 향상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 의료와 헬스가 분리가 돼 있지 않아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히고 좀처럼 나아갈 방향을 못 찾고 있다. 또 대부분의 투자도 디지털 의료 쪽에 집중돼 있어 사업화하는 게 쉽지 않다. 디지털 헬스 부문에 새로운 비즈니스 시범모델을 만들고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기회가 이어져야 한다.
아울러 산업계가 병원의 의료 데이터를 요청할 때, 정부 기관이 과도하게 비식별화 처리된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규제하다 보니 정작 데이터를 받아도 연구나 개발에 활용할 수 없다. 현재 개인 의료 데이터는 제도적, 기술적, 관리적 조치들이 다방면으로 강화돼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돼 있다. 이를 고려해 정부가 개인 정보 비식별화 제도의 빗장을 조금 더 풀어주길 바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