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배상기준에서 빠지고, 은행·보험사는 책임 미루기만… 우리는 유령인가요”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5개 대표 사례에 대한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가 나왔다. 민원인과 금융기관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대표사례 선정에는 은행만 포함됐다. 자율배상을 시작한 업권도 은행권 뿐이다. 보험사나 증권사를 통해 ELS를 가입한 이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지난 13일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주요 판매 은행 5곳에 대한 홍콩 ELS 대표사례를 한건씩 선정해 배상비율을 손실액의 30~65%로 결정했다. 판매사별로 보면 농협은행 65%, KB국민은행 60%, 신한은행 55%, SC제일은행 55%, 하나은행 30%였다. 기본 배상비율 20%에 가감요소를 반영해 최종 배상 비율이 정해졌다.
금감원이 발표한 ELS 분쟁조정기준안은 은행과 증권사에 적용된다. 5개 시중은행은 이를 수용해 자율배상을 시작했다. 분조위 결과 발표로 배상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LS를 판매한 6개 증권사들 중 자율배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곳은 아직 없다. ELS 변액보험을 판매한 보험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증권사는 금감원이 자율배상 계획과 현황을 파악한 바 있다. 또한 분쟁조정안에 판매자 배상비율 공통가중 요인으로 증권사(5%)를 따로 책정하는 등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ELS 변액보험의 경우에는 금감원 개입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변액보험 가입자는 분쟁조정안 구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11월 금감원이 H지수 폭락으로 ELS 변액보험 가입자가 입은 손실을 파악하려 생명보험사에 계약 규모와 손실 규모를 요청한 게 마지막이다.
금감원에 ELS 변액보험 불완전판매 민원이 접수됐지만, 금감원이 갈피를 잡지 못하며 은행과 보험사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실정이다. 은행 창구에서는 ELS 변액보험을 판매한 PB(프라이빗뱅커)들이 손실은 손실대로 보고, 구제대상에서도 빠졌다며 항의하는 민원에 시달리다 못해 “차라리 금감원 가이드라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들은 H지수를 예의주시하며 숨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H지수가 오르고 있어 추이를 지켜보면서 상황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LS 변액보험은 상품 구조가 은행에서 판매하는 ELS와 달라, 배상 가이드라인 제시가 까다로운 측면도 있다. 변액보험은 보험료의 일부를 특별계정(펀드)에 넣고 운용하면서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상품이다. 수익률이 조기상환 조건을 충족할 경우 6개월 단위로 조기상환이 가능하고 이를 다시 재투자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가입자가 보험을 해지하기 전까지는 손실이 확정되지 않는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도 ELS 변액보험과 관련해 민원 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가닥을 못 잡는것 같다”고 말했다.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가입자들 중에서도 변액보험 가입자는 소외된 처지다. 집단소송을 추진하는 등 큰 목소리를 내는 은행 가입자들과 달리 변액보험 가입자 숫자는 절대적으로 적다. 한 변액보험 가입자는 지난 19일에 ELS 가입자가 다수 가입한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려 “우리는 배상에 포함되지도, 집단소송에 참여할 수도 없다. ELS 가입자들 중에서도 더 공허하고 외로운 처지”라고 호소했다. 이어 “은행과 보험사는 금감원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피해자를 2번 우롱하고 있다”며 “존재만 할뿐 실체 없는 유령과도 같다. 이유는 변액보험 가입자가 소수이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금감원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ELS 변액보험 민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묻자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로썬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방카슈랑스 상품에 대해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은행과 보험사가 서로 핑퐁을 치다가 끝난 선례가 굉장히 많다”며 “피해 규모나 피해자와 민원 숫자가 적다고 감독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ELS 변액보험에 대해서도 불판 유형을 따져 배상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