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글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푸념글들이다. 어떤 것이 힘들고, 이런 이유로 괴롭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흥미만으로 스크롤을 넘기기 힘든, 한탄에 가까운 익명글이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기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글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보면 답답하다’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경찰청 소속인 작성자 A씨는 “수사기관과 은행에서 그렇게 홍보를 해도 당할 사람은 당한다”라며 “그들의 피해를 공감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입을 열었다.
A씨는 보이스피싱에 넘어간 사람이 있다는 은행의 신고를 받고 영업점에 출동했다. 최대한 친절하게 말을 걸어도 화가 난 답변만 돌아온다. 어떻게든 타일러도 보고 설득하려고 해도 피해자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결국 A씨는 더 할 수 있는게 없어 현장을 빠져나온다. “인적사항 불상, 50대 여성, 소리를 지르는 등 비협조적으로 나와 확인하지 못함”이라는 기록과 함께 말이다.
30분 뒤 다시 신고가 들어온다. ‘3000만원 대면 편취 당함’이라는 내용이다. 결국 막지 못했던 여성이 끝내 피해를 입고 만 것이다. 길가에 울며 앉아있는 피해자를 보며 수많은 만감이 교차한다는 교차한다는 A씨의 글은 냉소적이다.
최근 기자가 취재한 은행원들의 이야기에서 더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한 은행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이스피싱은 결국 타인의 돈을 갈취하는 행위기에 대부분 피해자들의 행동에서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한다고 말한다.
은행원들에게서 당시의 상황을 듣고 있으면 이들은 무조건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 최대한 친절하고, 거슬리지 않을 수준에서 출금 목적을 묻는 등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여기서 그나마 협조적으로 나오는 고객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앞서 경찰관이 겪은 사례와 비슷하게 넘어가면 괴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기자가 만난 B 센터장과 C 계장은 이 경우 좋게 끝나는 것이 현장에서 욕을 먹고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객이 불쾌함을 근거로 금융감독원과 은행 본사에 민원을 제기하면 두 차례의 걸쳐 각각 소명을 이어가야 한다. 십중팔구는 큰 탈 없이 끝나지만, 상위기관에 업무상 일어났던 일들을 해명하고 판결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큰 스트레스임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 손을 뻗는 이유는 간단하다. 은행원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죄책감이다. B 센터장은 보이스피싱임을 알면서도 피해자를 막지 못하면 몇 개월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객으로부터 욕을 먹고 짜증을 듣더라도 매번 정황이 보이면 마음의 각오를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건넨다고 말한다.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개개인이 스스로 유형을 알고 당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매번 수법을 듣고 이야기를 접하는 금융 관계자들이 아닌 이상 어려운일이다. 따라서 정부와 경찰, 금융사들은 홍보자료와 캠페인, 그리고 일선 현장 직원들에게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한다. 욕설을 듣더라도, 민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꿋꿋히 ‘보이스피싱 최전선’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악전고투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요청을 금융소비자들에게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의 배려와 이해심을 갖는 것을 바랄 뿐이다. 설령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당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해도, 잠시만 은행원과 경찰관이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경찰관 A씨와 은행원 B, C씨의 한탄과 냉소는 자부심과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