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하는, 이른바 설계자로 일하는 영일(강동원)은 늘 마음속에 찜찜함을 안고 산다. 친동생처럼 지내던 짝눈(이종석)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여겨서다. 자신도 곧 목표물이 되리라 생각하며 경계하는 그에게 어느 의뢰가 찾아온다. 하지만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팀은 와해되고, 누군가가 자신을 노린다는 확신을 느낀다. 혼란 속 영일은 아무도 믿지 못하고 청부살인 세력인 일명 ‘청소부’를 찾아 나선다.
영화 ‘설계자’(감독 이요섭)는 사건 위주로 구성되며 긴장감을 끌고 간다.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지만 깡통, 청소부 등 자체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팀원들도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부르며 장르물 특유의 분위기를 잔뜩 잡는다.
도입부가 신선하다. 모든 사고는 조작될 수 있고 의도가 있는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는 명제를 깔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장면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을 살피다 보면 서스펜스가 절로 살아난다. 찜찜함을 의도적으로 자아내며 메가폰의 의도대로 스릴감을 쥐락펴락한다. 신선한 초반부 덕에 뒷부분을 더욱더 기대하며 보게 된다. 독특한 소재 역시 빛을 발한다. 외인사 연감을 살피며 티 나지 않는 죽음을 고안하는 인물들의 모습 역시 새롭게 다가온다.
다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긴장감은 느슨해지고 지루함이 고개를 든다. 의뢰받은 건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같은 패턴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데다,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값이 지나치게 많아서다. 이 때문에 대사가 지나치게 많아진다. 중반부부터는 유튜버 캐릭터들이 설명형 대사를 전담할 정도다. 주제의식과 어우러지는 역할로 설정한 것과 달리 기능적으로만 쓰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캐릭터의 매력도 도드라지지 않는다. 사건 위주로 진행돼 서사가 상대적으로 부실해진 여파다. 쏟아지는 정보값에 비해 인물 사이 관계성 역시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는다. 극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하지만 이야기에 흥미가 도통 돋아나질 않는다. 개연성에서도 의문을 품을 부분이 여럿이다. 상영시간이 여타 작품보다 짧지만 집중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영화는 사고와 우연을 두고 여러 질문과 의문점을 남기려 애쓰지만, 이 같은 의도나 메시지가 마음에서 공명을 일으키진 못한다.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한다. 특히 의뢰인 주영선 역을 맡은 정은채가 돋보인다. 정은채가 나올 때마다 몰입감이 생긴다. 이무생은 적은 분량에도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강동원은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다만 배우들의 고군분투가 작품의 동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초반부의 흡인력이 중반부로 가며 급격히 떨어지고, 후반부에 다다라서는 맥없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결과물이 소재를 따라가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오는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99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