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상기구 WMO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서태평양 온도가 관측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주변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올해 가장 더운 여름이 찾아올 거란 가능성도 제기된다.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가 만든 자연재해 최대 피해자는 주거취약계층이다. 이들은 변화무쌍한 재해에 무방비로 희생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최근 만난 한국도시연구소 김기성 연구원도 이 점을 우려했다. 올 여름도 지난해 못지않은 폭염과 폭우가 예고됐다. 김 연구원은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기후위기가 주거권을 어떻게 약탈하는지를 소개했다.
기후위기로 취약계층 주거권이 침해를 받고 있다
“그렇다. 두말할 나위 없다. 기후재난 빈발소식은 해외에서 더 많이 나오고 있긴 하다. 국민인권위원회 용역 보고서를 쓰기 위해 문헌을 많이 봤는데 최근 몇 년간 이러한 뉴스는 끊임없이 나오는 것 같다. 허리케인이나 홍수로 기존 주거지를 위협받는 현상이 항상 주목받고 있다. 극단적인 추위나 더위가 발생하고, 기후 변동에 따라 (이런 현상이) 더 잦아질 거란 예측은 이미 나오고 있다.”
“극단적인 재난으로 반 지하 참사가 종종 발생했고 주택 이외 거처로 불리는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등이 전형적인 주거 취약계층인데,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주거 취약계층이 위험해진다는 구도는 한국사회에서도 꽤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취약계층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주를 의미하나
“그렇다. 정부나 지자체는 주거취약계층이라는 표현이나 지표를 목적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긴 한다. 다만 한국에서 주거 취약계층은 ‘정말 취약한 계층’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지옥고’(반지하⋅옥탑⋅고시원) 거주자나 최저 주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왔다.”
“최근엔 3,40년 된 노후주택을 보더라도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재난에 취약해졌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가 근처 주택이 위험해지는 현상이 작년에도 꽤 있었다. ‘취약하다’ ‘위험하다’라고 포착된 주거지가 더 많아지는 것. 예전에는 덜 위험해보이 곳들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현상도 있다.”
정부 대응을 어떻게 보나
“많이 미진하다. 녹색당으로 나왔으니까(서울녹색당 당원이기도 한 그는 당의 제1의제가 기후위기라고 말했다.) 현 정부는 특히 더 미진하다. 문재인 정부 땐 여러 시도가 있었다. 물론 현 정부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있다. 그렇다고 지난 정부가 아주 획기적이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주거지가 위험해지면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는 문제인데, 서울시가 반지하 거주 가구 사망사고 이후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진행되진 않았다.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사항이 있었겠으나 공수표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서울시가 선택한 방법은 정비사업, 모아주택이라고 하는 소규모 주택 정비 사업을 활성화하면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천진했다. 모아주택이 생기면 알아서 해소될 것이라고 했지만 시가 얼마나 의지가 없었는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모아주택은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라 다가구와 다세대 필지를 블록 단위(1500㎡ 이상)로 개발하는 정비사업 방식이다. 이 같은 모아주택을 여럿 모아 10만㎡ 이내에서 도시기반시설을 정비하는 게 모아타운이다. 업계에 따르면 연내 서울에서 약 18곳, 2677가구의 모아주택이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김 연구원은 모아주택을 비롯해 신통기획, 주거상향 지원 등 서울시가 추진 중인 사업을 낮게 평가했다.
“기후위기 피해를 줄이려는 주거 상향 지원 사업들이 몇 가지 있다. ‘비정상 거처 이주지원 사업’이나 지상으로 거처를 옮기면 월세를 지원하는 ‘주택 바우처’ 등인데 기존 세입자가 나가고 다른 세입자가 채워지면 다시 또 위험에 처하기 쉽다. 정부도 이런 집을 매입해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활용해보겠다고 했지만 실적은 거의 없었다. 이건 고민이 부족했다고 보는 게 맞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까 올해도 비가 좀 많이 오지 않겠냐는 식의 기상학자 전망이 나왔다. 그래서 조금 우려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탄소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그린 리모델링 사업 예산이 현 정부 들어 삭감됐다. 민간 건축물을 친환경으로 리모델링하면 이자를 지원하는 사업도 지난해 말을 끝으로 중단됐다. 신축 건물을 지을 때 에너지 효율 등급을 높이는 ‘제로에너지 빌딩’ 사업은 유예됐다. 건축비 상승 때문이다. 결국 ‘투-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제언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면 주거비가 오르고, 그렇다고 에너지 효율 개선을 안 할 순 없으니 어떻게 하면 서민에게 부담 가능한 거처를 공급할 수 있는지 고민을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은 더 위험한 곳으로 내몰릴 수 있다. ‘주거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은 이런 부분을 감안해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 공공주택 공급 외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공공분양이든 임대든 녹색당도 ‘녹색공공임대주택’을 하나의 표로 내세운 이유도 결국 공공임대주택을 중심으로라도 에너지 효율성을 굉장히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또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에너지를 쓴다. 폐기물을 처리할 때도 에너지가 쓰이는데, 이렇게 볼 때 신축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주택은 오히려 리모델링하면서 가야 된다는 생각도 든다.”
“서울시도 안심 집수리 사업을 하는데, 국내에선 집수리 시장 자체가 덜 활성화했다. 분양가가 워낙 높아졌고 재건축 부담금이 높다는 얘기를 다들 하고 있고 인구는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축을 많이 공급하는 패러다임은 슬슬 접고 쓸 수 있는 집은 에너지 효율을 고려해 고쳐 쓸 수 있으면 고쳐 쓰도록 해야 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이 그렇게 갈 일이 없다. 따라서 정부가 여러 방식으로 유도해야 한다.”
김 연구원은 연구소나 당 차원에서 개선 요구를 계획 중이다. 올해도 주거 이슈 관해서 자리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김 연구원은 끝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지적했다. “현 정부 탄소중립 기본계획, 기후위기 적응 계획이 기술 중심으로 배치된 내용이 있다. 기술이 심각성을 완화하는데 도움은 주겠지만 기후변화가 빠른 만큼 기술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 한다.”
“친환경 주택을 구매하거나 분양받은 신혼부부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본 정책을 흥미롭게 봤다. 예산이 많이 들 것이고 정책이 이상적인지는 성과를 두고 봐야겠지만, 집을 고르는 요인 중 하나로 에너지 효율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긍정적으로 봤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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