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전산) 데이터 지도가 엉터리로 흩어져 관리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초적 데이터맵 체계만 잘 갖춰도 행정망 오류도, 시스템 유지보수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실무자의 의지가 필요한데, 부족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국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잊을만하면 터지는 행정전산망 오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가 중요한 자산이 된 디지털 시대, IT강국으로 불리는 한국의 데이터 환경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문 교수의 생각이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공공 정보시스템 오류는 여전히 발생한다. 지난달 5일 정부24 오류로 1000여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7일에는 위택스 오류가 발생해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다.
문 교수는 “불필요한 데이터가 많고 과도하게 중복돼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진,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데이터 개수도 2만개를 넘지 않는다. 데이터가 2만개 이상 나오는 조직은 없다. 하지만 한국 대다수 국가기관 데이터는 100만, 200만개에 달한다. 방만하게 설계돼 관리가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이터는 하위 세부 내용을 담고 있는 폴더와 비슷하다. 예컨대 A마트가 500원짜리 라면을 B소비자에게 판다. A마트는 라면을 생산업체에 발주를 넣고 배송 과정을 거쳐 물건을 받는다. 이를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가 생겨난다. 고객이라는 개체는 소비자명, 주소, 연락처, 포인트 등의 정보를 모두 포함하는 데이터가 된다. 물품이란 개체는 상품명, 상품 가격 등을 하위로 포함한 하나의 데이터다. 고객 개체와 물품 개체 사이를 주문이라는 행위가 연결한다. 이러한 데이터가 끊김 없이 유기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데이터 지도의 역할이다. 데이터가 다니는 경로가 잘못 설계되면 정보를 제대로 읽어오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다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각의 데이터 개수를 간결하고, 중복되지 않도록 처리해 총 2만개를 넘지 않도록 통합 데이터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2만개를 넘지 않아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오류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 문 교수의 설명이다.
문 교수는 전산 담당 공직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하면서 인터넷의 전신으로 평가받는 ‘아르파넷’을 언급했다. 아르파넷은 지난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기관(DARPA)에 의해 처음 소개됐다.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테일러는 당시 미 국방부에서 정보처리기술 부서 소장이었다. 테일러는 이곳에서 3대의 각기 다른 컴퓨터가 교신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다. 사무실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있다면 더 편리하게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르파넷 구성의 시작이었다. 이후 아르파넷은 미 각지에 있는 연구소와 컴퓨터를 연결했고, 1983년 민간용 네트워크로 발전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통신망이 됐다.
문 교수는 “정부 예산이 (행정전산 관련) 실무자들의 손을 거쳐 쓰이기 때문에 이들의 관심이 중요하다”며 대구시의 데이터맵 선진 사례를 정부부처와 각 지차체가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지난해 대구시 행정데이터맵 구축 자문을 맡았다.
문 교수는 “앞으로 데이터는 더 많아질 것이다. 늘어나는 데이터만큼 보수 유지 운영비도 커진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부분을 수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오히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꼴”이라며 “과거 시스템을 서둘러 확인해 전면 재설계를 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기술적으로 예산을 아낄 수 있는 분야는 아껴서 의료, 연금, 국방 등 더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주장이 IT업계를 굶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IT업계도 데이터 유지 보수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창조적인 일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