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주, 경기도 등 몸집 큰 지자체의 금고 운영사업자 선정 시기가 다가오면서 은행 간 쟁탈전이 뜨겁다. 금고 운영사업자로 선정되면 손쉽게 대량의 저원가성 예금을 확보할 수 있어 은행의 수익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부산시는 제1금고(주금고)와 제2금고(부금고)를 맡을 사업자 선정 절차에 착수했다. 약정 기한은 4년이다. 부산시 예산 규모는 약 15조원에 달한다. 내달 금고지정 신청 공고가 나오면, 오는 9월 최종 선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 주금고는 부산은행이 24년, 부금고는 국민은행이 12년 동안 맡아왔다.
광주시도 새로 주금고와 부금고 은행을 선정할 계획이다. 광주시 주금고는 광주은행, 부금고는 국민은행으로 올해 12월31일 약정이 만료된다. 여기에 내년 3월에는 서울시 다음으로 예산 규모가 큰 경기도가 금고지기 뽑기에 나선다. 광주시와 경기도의 금고는 각각 약 7조원, 36조원 규모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인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시군구까지 합쳐 올해 말 금고 운영 은행을 새로 선정하는 지자체가 66곳에 달한다.
지자체 금고로 지정되는 은행은 지자체의 현금과 유가증권 출납·보관, 세입금 수납·이체, 세출금 지급 등을 전담한다. 자치구 금고 운영권 확보 경쟁에서도 유리해진다. 산하기관 임직원도 잠재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지역 주민에 대한 홍보효과는 덤이다. 지자체 못지않게 공공기관, 대학 등도 중요한 고객이다. 이들 기관의 금고지기를 맡기 위해 은행장이 직접 발 벗고 뛸 정도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관, 지자체 금고 유치는 저원가성 예금 유치를 용이하게 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춘다”며 “은행으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금고 지정 기준은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전성, 대출 및 예금금리, 지역주민 이용 편의성 등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도 출연금이 주요한 변수다. 출연금은 자치단체와 금고 은행 간 약정에 따라 금고은행에서 자치단체에 용도 지정 없이 출연하는 현금을 말한다. 부산시의 경우, 벌써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 하나은행은 지난 2월 부산신용보증재단에 110억원을 출연했다. 국민은행도 질세라 지난달 부산신용보증재단에 애초 약속한 60억원에 60억원을 추가해 총 12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기존 지자체 금고 시장 점유율 1위인 농협은행도 입찰에 뛰어든다. 농협은행 역시 부산신보에 20억원을 출연한 바 있다. 농협은행 측은 “입찰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출연 경쟁이 과열되자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9년 협력사업비 배점 축소 등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행안부는 협력사업비 배점을 4점에서 2점으로 축소하고 금리 배점을 15점에서 18점으로 확대하도록 금고지정 평가기준을 개선했다. 또 지자체 협력사업비가 순이자마진을 초과하거나 전년 대비 출연규모가 20% 이상 증액될 경우 과다한 출연금으로 보고 행안부에 보고토록 했다.
김민수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자체 금고 선정은 은행 입장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다. 정말 작은 군단위 지자체도 예산이 5000억원에 달한다. 가만히 있어도 수 천억원이 들어와 그 돈을 굴릴 수 있는 셈”이라면서 “이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비하면 협력사업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규모가 큰 광역시는 쟁탈전이 치열하지만 작은 시군구의 경우, 경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점이 오히려 문제”라며 “금고지정 평가기준 항목과 배점을 수정해서 지역주민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 시금고 운영을 맡을 수 있게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ESG 등 기후위기 대응이나 주민 접근성에 대한 항목에 배점을 높이는 등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