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금융사에서 자금을 빌리지 못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린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대부업체들마저 대출을 거절하면서 불법사금융에서 돈을 빌리려는 차주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19일 서민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저신용자 및 대부업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부업에서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개인신용평점 하위 10%) 인원이 약 4만8000~8만3000명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3만9000~7만1000명) 대비 크게 늘어난 수치다.
불법사금융 이용자가 늘면서 조달 자금도 늘었다. 이들이 지난해 불법사금융 시장에서 빌린 자금은 최대 1조4300억원으로 전년(최대 1조2300억원) 대비 2000억원 증가했다. 또 서민금융연구원이 지난 2월 대부업과 불법사금융을 이용한 저신용자 131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약 50%가 1년 기준 대출 원금 이상의 이자를 부담한다고 답했다. 연 1200%를 초과하는 이자를 내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0.6%에 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급전을 구할 방법이 없어 불법사금융을 두드린다는 응답 비율이 77.7%에 이른다는 점이다.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가 법정최고금리(20%)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이후 대출 문턱을 높이거나 아예 문 닫는 곳이 늘어난 영향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등록 대부업자는 8771곳으로 반년 새 47개 줄었다.
서민금융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율이 74.1%로 1년 전보다 6.1%p 증가했다. 실제 신용평점 하위 10%(신용등급 기준 7등급 이하)의 대부승인율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2022년 10.4%에서 지난해 5.4%로 꺾였다. 100명 중 95명은 대부업체의 대출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의미다.
대부업 활성화를 통해 저신용자의 금융 소외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게 서민금융연구원의 제언이다. 대표적으로 수신(예금) 기능이 있는 금융사와 대부업 등 비수신금융사간 최고금리 규제를 다르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법정최고금리가 20%로 묶인 뒤 대부업체들이 잇따라 영업을 축소하고, 대출 문턱을 끌어올리면서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난 저신용자가 늘었다고 분석하고 있어서다.
불법사금융 금리수준은 신용등급 등과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월평균소득 400만원 이상 이용자도 전년 15.0%에서 올해 20.7%로 늘어났다.
서민금융연구원은 보고서를 토대로 5가지 정책을 제안했다. 먼저 대부업 활성화를 통한 금융소외 해소를 꼽았다. 대부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준금리 변화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가 달라지는 ‘시장연동형 금리상한방식’ 도입을 제안했다.
또 예금수취 금융회사와 대부업 등 비수신 금융회사 간 최고금리규제를 차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소액대출의 경우 금리상한을 더 높게 차별화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불법사금융 이동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불법사금융 피해예방과 젊은 층에 대한 금융교육 강화 필요성도 제시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