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된 ‘여학생 조기입학’ 외에도 ‘여성 고학력 페널티’ 등 여성의 교육 기회를 제한하는 정책제안이 재조명되고 있다. 해당 정책들은 저출생을 극복을 위해 여성을 도구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는 고학력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방식의 접근은 저출생 및 인구절벽을 가속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여학생 1년 조기입학’ 주장과 함께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2017년 발표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간 여성의 배움의 기회를 간접적으로 제한하거나 페널티를 주는 정책 제안에 대한 분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저출생, 만혼, 비혼의 원인은 ‘고학력·고소득 여성’에게 있으니 고스펙 여성을 줄여버리자고 말한다. 보고서는 “고학력·고소득 여성들은 결혼시장에서 동등한 수준을 택하는 결혼인 ‘결혼 기회비용’을 따진다”며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유배우율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7년 전 작성된 ‘고학력 여성 줄이기’와 2024년 발표된 ‘여학생 1년 조기입학’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저출생 원인은 여성의 고학력에 있으니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하향결혼’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학생 조기입학 고학력 여성 줄이기 연관성을 지적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교육과 저출생에서 여성을 도구화해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많이 배우고 돈 잘 버는 거 막겠다는 나라는 처음 본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잘 살겠다는 게 죄냐. 이런 말도 안 되는 보고서만 안 내도 출생률 회복했을 듯” “이미 해외에서 출생률 끌어올리는 방법 다 분석해 줬는데 흐린 눈 한다. 역시 전세계 1등 소멸 위기 국가” “고스펙 여성 패널티 주기, 여학생 조기입학 시키기. 하나같이 내놓는 정책마다 여성혐오적이네. 저출생 극복 꿈도 꾸지 마라” 등의 반응이었다.
실제 2030 여성들도 저출생 원인을 ‘고학력‧발달이 빠른 여성’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에 분노했다. 30대 직장인 김모(31)씨는 “대한민국은 내가 20대에는 ‘대한민국 출산지도’ 만들어 여성을 출산 도구로 만들고, ‘고학력 여성 페널티’ 주장하며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자고 했다”며 “30대에는 여학생들 조기입학 시켜서 연상 남자랑 짝짓기 시킨다고 하는 나라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여성을 인간이 아닌 출산기계나 짝짓기 상대로 생각하니 이런 발상이 나오는 것”이라며 “진짜 저출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이런 황당하다 못해 혐오적인 주장을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인 아직 저출생 극복에 조급하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2016년 행정안전부가 자치단체별로 가임기(15~49세) 여성 수와 전국 순위를 공개한 것이다. 이후 “여성의 도구화” 및 “특정 성별에 저출생 책임을 지게 한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고 결국 철회했다.
취업을 앞둔 20대 대학생들은 해당 제안을 비판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실제 취업 등 사회 진출에서 ‘여성 고스펙 줄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겪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대학생 임모(22)씨는 “지난해 블라인드에 ‘여대 출신들은 이력서도 안 보고 거른다’는 글이 올라와 노동부 감사가 들어가는 등 논란이 됐던 걸로 안다”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국책기관에서 고학력 여성에게 패널티 주라는 제안이 있었다는 걸 보니까 취업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시 커뮤니티에서도 여대를 깎아내리는 글들이 종종 보인다”며 “입결 점수가 크게 차이 나는 타 대학과 여대를 붙여놓고 일방적으로 여대를 깎아내리는 방식인데, 이게 다 이런 의도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의심된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는 고학력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정책은 ‘저출생‧인구절벽’을 가속한다고 지적하며 저출생 극복은 정석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을 차별하는 국가, 여성의 폭력을 일상화하고 공적으로 개입하는 걸 주저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며 “나 자신도 안전하지 않고, 아이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데 왜 아이 낳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사회적 여건 자체가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기를 환경이 아닌데 이런 건 들여다보지 않는다”라며 “‘여성들을 1년 일찍 입학시켜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자’ ‘여성에게 인턴 기회도 주지 말고 고스펙 차단해서 빨리 시집가는 게 살 길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등 이런 저열한 방식의 접근은 출산과 인구절벽을 더 가속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저출산을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도 지적했다. 허 조사관은 “현재 정부는 저출산 원인에 대해서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것만은 피해 가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정답은 다 나왔다. 북유럽 국가처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및 불이익이 없다면 여성들은 아이를 낳을 것”이라며 “저출생 극복은 그냥 정석대로 가면 된다.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결과를 장담할 수 있는 길로 가보자는데 이것만 빼고 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