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구매 이후 중대한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제조사로부터 초기에 고지받지 못해 ‘레몬법’ 적용이 어려운 사례가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레몬법은 자동차에 반복적으로 결함이 발생하면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 환불, 보상 등을 하도록 규정한 소비자보호법이다. 신차를 구매한 지 1년 또는 주행거리 2만km 이내에 해당하는 차량에서 중대하자 2회, 일반하자 3회 발생 시 ‘안전하자 심의 위원회’를 통해 신차 교환 또는 환불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단 운전자는 결함 발견 시 수리를 마칠 때마다 제조사에 ‘하자재발통보서’를 보내야 한다.
통상 두 번의 하자재발통보서가 제조사에 전달돼야 레몬법 적용 기준에 충족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수리 후에도 동일한 결함 증상이 반복될 것을 고려해 최초 수리를 마치고부터 하자재발통보서를 제조사에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1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조민희(가명)씨는 지난해 9월 출고한 벤츠 코리아 EQB 차량을 구매했다. 운행 4개월 만에 ‘구동 출력 감소’가 발생해 수리했지만, 두 달 뒤 동일 증상이 발생했다. 재입고해 모터를 수리한 조씨는 수리를 마친 당일 운행한 지 10분 만에 동일 증상을 다시 겪었다. ‘구동 출력 감소’ 증상뿐만 아니라 ‘능동형 어시스트 작동 불가’, ‘차선 이탈 방지 불가’ 등의 에러가 추가로 발생했다.
조씨 차량은 레몬법 적용이 가능한 사례다. 하지만 최초 수리 당시 중대하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고지받지 못해 두 번째 수리를 마치고서야 벤츠 코리아에 하자재발통보서 보냈다는 설명이다.
조씨는 벤츠코리아가 고객의 알권리를 침해했다고 강조했다. 기술 자문까지 진행했던 벤츠 코리아가 자신의 차량이 중대하자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동일 증상 재발생을 대비해 하자재발통보서 절차를 안내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레몬법 적용을 위해서는 하자재발통보서를 제조사에 두 번 보내야 한다. 최초 수리부터 보냈어야 했는데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 결국 한 번 더 수리를 맡긴 뒤 같은 증상이 나올 때까지 차량을 운행해야 하자재발통보서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사고 위험을 고려해 지난 5월15일 이후 해당 차량을 운행하지 않고 있다. 조씨는 “고속도로 주행하지 말라, 장거리 운행도 안 된다고 안내하는 차를 어떻게 탈 수 있나. 재입고를 거부하자 제조사 측에서는 교환을 제안했다”며 “수리 후 동일 증상이 반복될 때까지 운행할 자신도 없고, 안전에 대한 신뢰가 깨져 더 이상 벤츠를 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조씨는 딜러사로부터 계약 당시 동의한 ‘자동차 교환ㆍ환불중재 규정의 수락사실 및 동 규정의 요지’ 항목에 따라 처음 수리를 맡긴 이력은 중대하자통보서를 제출할 근거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구매 당시 위탁 구매를 진행했는데, 딜러사 관계자가 임의로 특정 조항에 동의한 뒤 정확한 내용을 안내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계약 이후에도 해당 조항이 레몬법 적용을 즉시 받기 어려운 조항이란 사실 또한 고지하지 않다가 문제가 발생한 뒤에서야 알렸다는 설명이다.
쿠키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딜러사 관계자는 조씨와의 통화에서 “구매 당시 동의한 자동차 교환·환불 규정은 레몬법 적용을 구매 즉시가 아니라 추후 문제가 생겼을 때 신청 후 적용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신청은 하자재발통보서를 의미하는데, 첫 번째 정비이력에는 하자재발통보서가 적용이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해당 조항에 대해 “제조사 측이 중대하자 발견 시 반드시 고지해야 하는 의무가 없어 하자재발통보서 발급이 늦어진 사례로 보인다”며 “레몬법 요건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재수리 후 동일 하자 증상을 발견한 뒤 하자재발통보서를 기한 내에 제출해야 적용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비자가 동의한 조항은 문제 발생 시 소송이 아닌 합의로 제조사와 해결하겠다는 내용을 의미한다”며 “계약서 상 특약으로 교환이나 환불을 배제한다는 조항이 없어 문제의 소지는 없지만, 제조사는 소비자에게 해당 조항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 뒤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 고객 동의 조항이 레몬법 적용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관계자는 “우선 해당 사안은 하자재발통보서 제출이 1회에 그쳐 레몬법 적용 요건이 안 되는 사례”라며 “실제로 레몬법 적용이 어려워 제조사와 협의로 진행을 원하는 고객들이 있어 많은 분이 해당 조항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조항은 벤츠만 그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 제조사 역시 동일하다”라면서도 “불편함을 겪으신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내방 계약을 하지 않은 만큼 소통 과정에서 누락이 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