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휘)는 올해 상반기 극장가의 반전으로 통했다. 개봉 당일 좌석판매율 9.3%로 출발해 관객 39만7997명을 동원한 이 작품은 한 번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동 시기 상영 중이던 ‘범죄도시4’(감독 허명행)에 밀려서다. 하지만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의외의 성적을 냈다. 현재까지 이 작품의 누적 관객 수는 약 122만명. 올해 상반기 중 1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 다섯 편 중 하나다.
영화계의 양극화를 두고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 동안 ‘범죄도시4’와 ‘파묘’(감독 장재현)까지 1000만 돌파 작품 두 편이 나왔으나, 그 외에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해서다. 올해 영화 중 100만 관객을 넘긴 건 ‘범죄도시4’, ‘파묘’와 ‘시민덕희’(감독 박영주), ‘외계+인 2부’(감독 최동훈)와 ‘그녀가 죽었다’뿐이다. 이 중 1000만 영화들만 관객 수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시민덕희’와 ‘그녀가 죽었다’는 손익분기점에 근접했으나 ‘외계+인 2부’는 손익분기점(약 700만명)에 한참 못 미치는 143만명을 모았다.
팬데믹 이후 극장가 상황이 급변하며 과거의 흥행 공식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거대 자본을 내세운 블록버스터나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해도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사례가 많아졌다. 잘 되는 영화로만 관객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해졌다. 1000만보다 100만 관객 돌파가 더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대박’과 ‘쪽박’ 사이 ‘중박’ 영화가 희귀해지면서 한국영화의 허리가 끊긴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 지 오래다.
업계에서는 여러 실험을 통해 타개책 마련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관객층을 세분화해 개봉 전략을 짜거나 단편영화를 싼값에 단독 개봉하고 개봉일과 시기를 달리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죽었다’가 대표적이다. ‘그녀가 죽었다’는 동 시기 경쟁 상대였던 배우 강동원 주연작 ‘설계자’(감독 이요섭)와 시리즈 팬덤을 보유한 할리우드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감독 조지 밀러)에 비해 경쟁력이 비교적 약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실관람객 사이 입소문이 이어지며 좌석판매율 상위권을 유지했다. 영화의 뒷심을 기대한 배급사의 전략 또한 주효했다. 관객 대면 행사를 개봉 2주 차부터 배치하며 흥행에 힘을 실었다. ‘시민덕희’ 역시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주제 의식과 명절이라는 개봉 시기가 어우러져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가격의 고정관념을 깬 사례도 있다. 손석구 주연 단편영화 ‘밤낚시’(감독 전병곤)는 상영시간 12분59초, 푯값 1000원을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통상적으로 단편영화는 여러 작품을 한 데 엮어 개봉하지만 ‘밤낚시’는 최초로 단독 개봉했다. CGV에서만 상영 중인 ‘밤낚시’는 실관람 평점인 골든에그지수 92%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탔다. 당초 2주 동안 금·토·일 주말 사흘만 상영하기로 했으나, 인기를 얻어 상영 기간을 한 주 늘렸다. 이외에도 ‘하이재킹’(감독 김성한)은 수요일이 아닌 금요일 개봉을 추진하며 주말 특수를 노렸다.
극장가는 새로운 시도가 활력을 더할 수 있다고 본다. 한 영화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입소문이 나려면 일단 관객이 극장에 와야 하고, 그러려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필요하다”면서 “작품이나 관련 요소에서 신선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봤다. ‘서울의 봄’의 초반 흥행을 이끈 심박수 챌린지가 좋은 예다. 작품이 가진 몰입감이 SNS 인증 문화와 어우러져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관계자는 “이제는 성수기·비성수기와 같은 외부 조건보다 작품의 개성과 완성도가 훨씬 더 중요해진 만큼 이를 돋보이게 하는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