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칼날처럼 맞부딪히던 1960년대 한국.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높아질 때 정치권에 혜성처럼 새 얼굴이 나타난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올브라이트 장학생 김산(변요한)이 그 주인공이다. 나라를 바꾸고 싶은 삼식이 삼촌(송강호)에게 김산은 존재 자체로 복덩이다. 누구나 배고프던 시대, 김산은 먹거리를 가져오는 삼식이 삼촌을 쉬이 외면할 수 없다.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고 원대한 꿈을 펼치자는 삼식이 삼촌 제안에 그는 갈등한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특히나 마지막 회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던 배우 변요한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디즈니+ ‘삼식이 삼촌’에서 그가 맡은 건 청년 정치인 김산. 역사의 격랑 앞에서 폭넓은 변화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매 작품 자신을 내던진다는 심정으로 연기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5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변요한은 “모두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며 현장에 그리움을 드러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에도 변요한에게 ‘삼식이 삼촌’이 남긴 흔적은 짙었다. 지난달 영화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휘)로 스크린 나들이에 나섰던 그는 ‘삼식이 삼촌’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 속 인물로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났다. 촬영에 임하던 5개월은 “많은 걸 배우고 때론 버겁기도 하던” 시간이었다. 선배 배우 송강호와 함께 극을 지탱하며 낭만과 격변의 시대인 1960년대를 만들어갔다. 김산은 삼식이 삼촌을 의심하다 내심 그를 통해 아버지의 부재를 채운다. “송강호 선배를 존경하지만 동시에 큰 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을 잇던 “고민과 부담을 함께 나눌 수 있어 그저 기뻤다”고 돌아봤다.
송강호만 있던 건 아니다. 이규형, 유재명, 서현우, 진기주, 티파니 영 등 많은 이가 변요한과 함께 호흡했다. 변요한은 “현장의 치열함이 좋았다”면서 “장면에 따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울컥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며 애틋해했다. 김산의 연설 장면은 그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삼식이 삼촌’의 백미다. 중요한 장면인 데다 각본만 세 쪽을 넘어갈 정도로 분량 역시 막대했다. 부담감에 훌쩍 여행도 떠났단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숨통이 트일까 싶어 무작정 길을 나섰죠. 그러다 느낀 게 있어요. 제가 답을 찾고 숨 쉴 수 있는 곳은 현장이더라고요.”
변요한은 회를 거듭할수록 김산에게서 자신을 봤다. “‘바람이 어디로 불지, 파도가 어디로 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저 늘 망망대해에 서 있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거죠.’ 김산의 이 대사가 꼭 제 얘기 같았어요. 사실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망망대해가 있잖아요. 제가 느낀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연기했어요.” 야망을 품은 김산은 이를 적재적소에 드러내고 숨긴다. 변요한은 “김산과는 본질적인 감정이 닮았다”면서 “나 또한 배우로서 분명한 꿈이 있다”고 힘줘 말했다.
“매 작품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으려 해요. 배우로서 작품을 많이 남기고 싶거든요. 한계에 부딪혀도 조금씩 뛰어넘을 거예요. 감정을 연기에 다 낭비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저를 위해 연기했지만 이젠 달라요. 연기에 저를 다 쏟아버리길 바라요. 그래야 제가 행복하더라고요. 약하고 빈약한 감정까지도 내보일 거예요. 이게 제가 연기를 즐기는 방식입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