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역대급으로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이 올해만 약 1조 40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27일 기준 약 1조 2924억엔으로 집계됐다. 지난 27일 원·엔 재정환율 마감가(100엔당 864.37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11조 1711억원 규모다. 지난해 말(1조 1330억엔)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서만 1594억엔(약 1조 3778억원·14.1%) 늘었다.
엔화 예금 잔액이 증가한 것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환차익을 기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해 5월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작년 9월엔 1조엔을 넘어서기도 했다. 다만 올해 약 6개월간의 증가 폭은 지난해 상반기(2063억엔)와 지난해 하반기(1957억엔)와 비교하면 다소 축소됐다. 환율이 근 10년 내 최저점이지만 엔저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추세가 꺾인 것으로 보인다.
엔화 환전 규모도 지난해보다는 줄었다. 올해 들어 지난 27일까지 5대 은행의 엔화 매도(원→엔 환전) 건수는 170만 4486건, 매도액은 약 1716억엔이다. 지난해 상반기(195만2455건·1853억엔)와 하반기(219만3070건·2271억엔)보다 건수와 매도액 모두 감소했다.
최근 엔화 가치는 37년 만에 최저수준까지 밀린 상황이다. 엔·달러 환율이 지난 28일 장중 161엔을 넘었다. 엔·달러 환율이 161엔까지 오른 건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 만이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가 지연되는 가운데, 일본도 통화 완화 정책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아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며 ‘슈퍼 엔저’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슈퍼 엔저 현상 장기화로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금융시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마침내 달러·엔 환율이 160엔대에 진입했는데 심리적 방어선인 160엔을 돌파했다는 점에서 엔화 약세 심리가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원·엔간 동조화 현상이 강해진 상황에서 엔화 가치 급락 현상은 당연히 원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해외자산 매도와 일본은행의 공격적 긴축조치가 추진된다면 국내 금융시장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