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은행권 현장점검을 예고했다. 연간 목표에 맞춰 가계대출을 취급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겠다는 것. 다만 이미 4월부터 가계부채가 늘어온 만큼, 증가세를 잡기에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오는 15일부터 가계대출 취급 은행들을 대상으로 가계대출 관리 실태에 대한 종합점검에 나선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빠른 곳은 현장, 나머지는 서면 점검으로 내달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금감원은 구체적으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및 스트레스 DSR 규제 준수 여부 △가계대출 경영 목표 수립 및 관리체계 등을 면밀히 점검할 계획이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 3일 연 ‘은행권 가계부채 간담회’에서 “최근 성급한 금리하락 기대와 일부 지역에서의 주택가격 상승 예상 등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더욱 빨라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가계대출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금감원은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방향이 은행 영업현장에서 차질 없이 집행되도록 각 은행의 가계대출 관리 실태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가계부채가 2023년 말 기준 GDP 대비 93.5% 수준이고, 2년 연속 하락하는 등 대체로 관리가 안정적으로 도고 있다는 입장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97.1% △ 2021년 98.7% △2022년 97.3% △2023년(추정치) 93.5%로 하락세다.
그러나 당국에서 내세운 수치는 GDP 기준연도 개편을 반영한 ‘통계적 착시’ 효과를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5일 국민계정 통계 기준년을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변경했다. 변동 이후 2020년 명목 GDP는 2058조원으로, 2015년 기준(1조941조원) 대비 6%가 증가했다.
모수가 커지면서 가계나 정부 부채 비율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변경 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103% △2021년 105.4% △2022년 104.5% △2023년(추정치) 100.4%였다. 기준년 변경만으로 2023년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4%에서 93.5%로 6.9%p 큰 폭으로 떨어진 셈이다.
사그라드는듯 싶던 가계부채는 지난 4월부터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 572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달(703조 2308억원) 대비 5조 3415억원 늘어난 수치다. 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 2월과 3월에는 각각 1조9000억원, 4조9000억원씩 줄어들며 2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4월 들어 4조1000억원 늘어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5월 5조1000억원, 6월 5조3415억원 늘어 석 달 연속 증가했다.
은행들은 잇따라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당국 정책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국민은행은 3일부터 주담대 금리를 0.13%p 인상했다. 현재 주담대 혼합금리(5년 고정 후 변동) 기준 3.13∼4.53%다. 하나은행도 지난 1일부터 주담대 금리 감면 폭을 최대 0.2%p 축소 조정하는 방식으로 금리 인상에 나섰다. 하나은행의 현재 주담대 혼합금리는 3.33∼3.73%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일 가계부채 증가를 두고 직접 은행권에 경고했기에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시선도 나왔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산금리 조정은 하루아침에 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이 원장 발언과는 연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출 한도를 조이는 규제(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연기해 놓고, 뒤늦게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만으로는 가계대출을 틀어막기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있다. 올 하반기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만료로 그간 억눌렸던 전세가격이 한꺼번에 오르면서 다시 전셋값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서 나온다. 통상 전셋값 상승은 집값 상승의 선행 지표로 여겨진다. 이미 부동산 시장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지난달 29일까지 신고된 물량이 총 4935건이다. 이는 2021년 5월(5045건) 이후 3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금융당국은 뒷북 대응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부원장은 “애초 가계대출 추이를 좀 더 지켜보자고 판단했었으나, 최근 1∼2주 사이 시장이 과열될 조짐이 있어서 선제적으로 대출 관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