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360조원을 투입해 줄기차게 저출생 대책을 마련해 왔음에도 출산율은 오르긴커녕 바닥을 모른 채 추락 중이다. 그럼에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이들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라고 칭송받는 시대임에도, 축하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기 임신’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예비 한부모들은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한다. 오는 19일 보호출산제 시행을 앞두고 미혼모(비혼모)들의 삶을 조명해 우리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할 현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
# 양육 미혼모 박모씨는 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보내며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 다른 엄마들이 있는 단톡방에 참여했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어디 살아요’ ‘아이 아빠는 무슨 일 하나요’ 박씨를 향해 질문이 쏟아졌다. 호구조사가 끝난 이후, 늘 시끄럽던 단톡방이 조용해졌다. 박씨는 그저 엄마들의 온라인 활동이 뜸한 것뿐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얼마 후 박씨는 그가 없는 다른 단톡방이 개설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처였다.
1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비혼 엄마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조금씩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에 틀어박혀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혼 엄마가 된 순간 많은 엄마는 원가족과의 단절, 학업 단절, 직장 단절, 친구와의 단절 등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사회적 고립·고독은 비혼 엄마는 물론,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고립으로 인한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원가족이 있어도 지지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가족과의 단절은 비혼 엄마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영향을 분다. 관계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지난해 회원 1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6.3%가 ‘원가족으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내가 원가족을 돕는다’는 답변도 9.6%나 됐다. 절반 가까이(48.7%)만이 원가족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비혼 엄마들은 연대로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고 있다.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제 막 고통받기 시작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비혼 엄마 김모씨는 “설날, 크리스마스, 연말에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롭다. 이럴 때 양육 미혼모 모임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며 “설날에 함께 모여 떡국을 먹고, 다음 날 아침 해맞이를 한다. 아이들이 세배하면 세뱃돈도 주는 게 연례행사”고 말했다.
이어 “간혹 이런 활동에 후원이 왜 필요하냐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며 “외로운 상황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엄마도 혼자 양육하면서 자기 안으로 많은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혼모 당사자 단체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민정 대표는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미혼모 대상으로 자조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애란원 등 미혼모 생활시설에서 퇴소한 엄마를 대상으로 자조모임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협회의 경우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 지원을 통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인턴십을 하는 비혼 엄마들도 있다.
비혼 엄마의 활동은 자녀의 사회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함께 여러 번 캠프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자주 만난다. 이런 활동으로 얼굴을 익히다 보니 아이들이 형제처럼 서로를 챙긴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엄마들끼리 감동해 ‘우리 애들 너무 예쁘다’ ‘우리가 아이들 너무 잘 키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협회는 해마다 설 캠프, 스키 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다양한 활동이 어려웠던 비혼 가정 자녀들이 고립되지 않고 많은 도전을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다만 후원 내용에 따라 운영이 불투명하다는 점은 아쉬움이다.
전문가들은 비혼 엄마의 사회 교류가 당사자 모임 밖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옛날 대가족 시대에는 ‘이렇게 양육해야 한다’고 알려주거나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인프라가 없다. 살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미혼 가정 중 발달 지연 자녀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비혼 엄마도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만큼 이러한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