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비롯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의 탄핵안 등 계속해 정쟁적 성격의 청원글이 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동의청원은 필요한 시스템이나 정쟁의 장으로 비화되서는 안 된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7일 국회 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143만4784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18일과 26일 두 차례 청문회가 진행됐다. 1차 청문회에선 고(故)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이 쟁점으로 다뤄졌고, 2차에선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이 문제 제기 됐다.
맞불 성격의 윤 대통령 탄핵안을 반대한다는 청원도 등장했다. 관련 청원은 오는 3일 종료될 예정으로 현재까지 5만명의 동의를 받아 법사위에 회부될 자격을 갖췄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탄핵안 역시 지난 4일 국민동의청원에 올라 5만명을 넘겼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채상병 특검법 문제 등 군대 내 많은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쇄신이 필요하는 취지의 청원이다.
국회 청원 홈페이지에 등장한 탄핵안들이 윤석열 정부만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에 대한 탄핵 청원글도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지난 18일 법사위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권한을 남용해 위원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정청래 위원장의 의원직 박탈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청원은 10만명의 동의를 넘어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로 회부될 예정이다. 다만 윤리특위가 아직 구성되지 않아 안건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 위원장의 막말이 품위 및 국격 훼손을 하고 있기에 제명을 요구하는 청원도 올랐다. 아직 법사위 회부 요건인 5만명은 넘지 못한 상태이나 다음달 17일까지 동의할 수 있는 기한이 남았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한 헌법 제26조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30일 동안 5만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하면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된다. 국민 주권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청원제도는 긍정적인 제도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국민 여론을 직접 보여줄 수 있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이를 풀어나갈 일종의 신문고의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면서 과거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가 폐쇄되면서 국민들이 대안을 찾아 국회 청원으로 몰린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청원제도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강한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매번 정쟁적인 성격의 글들이 반복되면 청원 자체의 이미지와 신뢰도가 무너져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지적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26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지금 국민청원 시스템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청원의 복사판이다. 여론 조작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정략적인 놀이터가 된다면 순수한 의미의 입법 청원은 빛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