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G마켓 상장 당시 구영배 큐텐 대표의 출사표다. 그러나 18년이 지난 지금 밝혀진 그의 세계 진출 방식은 부실기업들을 모아 덩치를 키운 뒤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꼼수에 불과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글로벌 진출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궤변에 가까운 그의 변명을 듣고, 1세대 이커머스의 신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새삼 격세지감이 들었다. 글로벌 공룡을 무릎 꿇린 토종 마켓 창업자가 맞나 싶은 정도였다.
구스닥에서 출발해 G마켓과 큐텐, 지오시스까지. 그의 성씨에서 따온 ‘구(G)’의 신화는 말 그대로 출혈의 역사였다. 실적이 저조해 구스닥에서 분사했던 G마켓의 역전 신화도 파격적인 출혈 판매에서 시작됐고, 현재 큐텐의 몰락이라는 결론도 상장을 위한 과도한 출혈 투자가 원인이 됐다.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한 돈으로 싱가포르에 만든 큐익스프레스를 상장시키기 위한 출혈 투자는 사기에 가깝다. 상황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사재를 털어 사태를 해결하겠다면서도 큐익스프레스 지분만은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은 투자금 회수를 위한 뒷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그에게 성공의 키를 쥐어준 G마켓이다. ‘티메프’ 사태로 이커머스 시장의 재편이 예상되는 지금, 그가 남의 회사인 G마켓에 직접 반사이익을 내줄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매각 후 이베이와의 10년 겸업 금지 계약기간이 끝나자 한국 시장을 두드리던 그는 다시 매물로 나온 G마켓을 욕심냈지만 신세계에 고배를 마셨었다. SSG.COM과 G마켓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탈쿠팡족’을 노리고 있던 신세계에게는 이번 사태가 또 하나의 기회가 된 셈이다. 8월 쿠팡 월회비 인상 이슈와 티메프 사태로 안전지대를 찾는 고객들의 이동과 맞물려 네이버쇼핑과 신세계는 치열한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중국발 C커머스들의 참전은 덤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IMF는 한국 기업의 자산 부실화를 경고하면서 계열사 간 리스크 전이 방지와 고객자산의 엄격한 분리를 권고했다. 이후 한국 기업의 재정 건정성이 확연히 개선됐지만, 신생 시장인 이커머스 업계에는 어찌된 일인지 과거의 대금정산 관행이 거꾸로 뿌리를 내렸고 이제 와서 업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자칫 고객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판매사들에게는 줄도산이 예고됐다. 불투명한 구태의 잔재를 답습한 이커머스 시장은 다시 한 번 IMF의 경고를 되새겨 볼 때다. 한 번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두 번의 실수는 다 같이 몰락하는 지름길을 열 뿐이다.
전체 이커머스 시장의 IMF 시기가 도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부의 개입 여부와 관계없이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관행 개선과 경영 투명화라는 고통 분담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