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장관이 펼쳐졌다. 가수는 객석으로, 관중은 무대로 향했다. 활화산 같은 열기가 넘실대던 이곳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 이처럼 색다른 광경을 연출한 주인공은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2024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첫날의 대미를 장식한 미국 하드코어 펑크 록 밴드 턴스타일이다. 이들은 타오르는 에너지와 광기 어린 음악으로 무대 경계를 깨부수며 뜨겁게 날뛰었다.
턴스타일이 펜타포트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진 않았으나 록 마니아 사이에선 공연 잘하는 밴드로 명성이 자자하다. 앞서 오른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흥분한 관객들이 무대로 모여든 일이 화제였다. 후지 록을 거쳐 펜타포트에 왔으니 기대가 더해질 수밖에. 대표 출연자(헤드라이너)인 이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려 하는 관객들이 모여 무대 앞은 일찌감치 인파로 빼곡했다.
관객과 턴스타일 사이엔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음악 앞에 언어 장벽은 아무 의미 없었다. 보컬이자 프론트맨(밴드 리더)인 브렌던 예이츠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중을 좌지우지했다. 추임새만으로도 뜨겁게 호응이 이어졌다. 객석으로 다이빙하며 몸을 날릴 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니엘 팡의 신들린 드럼 연주에는 탄성이 쏟아졌다. 음악에 심취하던 관중은 이내 무대로 향했다. 기꺼이 빗장을 푼 무대는 순식간에 관객들로 가득 찼다. 턴스타일이 선사한 음악 무아지경에 단단히 홀린 모양새였다. 무대를 점령한 이들에게선 고양감이 흘러넘쳤다.
턴스타일 외에도 여러 밴드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6년 연속 펜타포트 무대에 선 밴드 새소년은 처음 출연했던 스무 살 당시를 회상하며 “이 생활을 6년이나 했지만 여전히 전날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뭉클해했다. 신보 발매 전까진 펜타포트에 오지 않겠다는 선언에 앨범을 내라는 애정 어린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능숙하게 무대를 마친 이들은 “앞으로도 삶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음악을 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새소년에 앞서 무대를 채운 일본 밴드 인디고 라 엔드는 흔들림 없는 노래 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미국 록 밴드 소닉 유스 출신 가수 킴고든은 혼자서도 무대를 장악했다. 국내 인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특유의 감성적인 음악으로 감미로움을 전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만큼 올해 펜타포트는 폭염에 철저히 대비한 흔적이 엿보였다. 행사장 곳곳에 에어컨 등 냉풍기를 구비한 쿨존과 쿨링 버스를 마련하고 자원활동가들의 쉼터도 설치했다. 각 공연 무대 근처에 의료진을 배치해 돌발 상황에도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볼거리도 눈에 띄었다. 록 페스티벌의 상징인 대형 깃발도 곳곳에서 나부꼈다. 성격 심리검사인 MBTI의 밈(유행어)을 활용한 ‘너 T발 록이야?’를 비롯해 ‘로커가 돼’, ‘이것저것 보장하락’, ‘주2일제 도입하다’ 등 다양한 메시지가 돋보였다. 개막식은 화려한 드론 쇼로 꾸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펜타포트는 오는 4일까지 이어진다. 둘째 날인 3일에는 미국 그래미 어워즈 12관왕의 주인공인 미국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 잭 화이트, 마지막 날인 4일에는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국내 밴드 잔나비가 간판 출연자로 나선다. 실리카겔, 브로큰 발렌타인, 선우정아와 최근 인기리에 활동 중인 데이식스 등도 무대를 꾸민다. 해체를 앞두고 고별 투어를 진행 중인 브라질 헤비메탈 밴드 세풀투라는 펜타포트를 통해 23년 만에 내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