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금융당국에 ‘지급결제 전용 계좌’를 발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급결제 계좌 개설로 은행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아껴 소비자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드업계는 전날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금융위원장 금융권 릴레이 간담회:여신전문업권’에서 “지급결제 전용 계좌 운영을 허용해 달라”고 건의했다. 지급결제 전용 계좌는 지급과 결제를 목적으로 하는 용도로 제한된 계좌를 말한다. 여신 및 수신 기능이 없다. 따라서 이자 지급도 금지된다. 예금자보호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카드사는 비은행 금융회사로 현재 입출금 계좌를 발급할 수 없다. 송금이나 간편결제도 불가능하다. 이에 소비자가 카드로 대금을 치르면 은행 계좌에서 금액이 결제된다. 카드사의 지급결제 전용 계좌 계설이 허용되면 은행을 거치지 않고 대금 결제가 가능해 진다. 예컨대 소비자가 ‘삼성카드 통장’, ‘현대카드 통장’에 카드 대금을 넣어 놓으면 대금이 자동으로 이체되는 구조다.
카드업계는 자체 계좌를 운영하면 은행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줄어드는 만큼 소비자 혜택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카드사 별로 계좌가 개설되면 기존 은행 계좌 이용 프로세스에 따르던 수수료가 완화된다”며 “계좌 출금이 잦아 수수료 지출이 많은 체크카드 결제 등에서 추가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드사들은 실제 은행에 상당한 수수료를 매년 지급하고 있다. 4개(하나․신한․우리․롯데) 카드사는 △2020년 3650억원 △2021년 3321억원 △2022년 3290억원 △2023년 3346억원의 수수료를 은행에 지급했다. 지급결제 전용 계좌를 운영할 수 있다면 이에 준하는 금액을 소비자 혜택에 쓰겠다는 것.
신용카드 발급이나 카드론 사용을 위한 신용평가에 자체 계좌를 통한 금융거래 이력이 반영될 수도 있다. 카드사는 자사 거래내역을 제외한 타 금융사 거래 내역을 신용정보원을 통해 받고, 이 정보를 종합해 신용을 평가한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자체 계좌 내역이 있다면 회원의 신용도 등을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드사의 계좌 개설 문제는 지난해에도 논의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은행의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해 보험사, 카드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도 입출금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지급결제업’ 도입을 검토 한 바 있다. 하지만 은행권의 반발과 시장 불안으로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등 사건이 있어 비은행권에 관한 우려가 커 논의가 더 진행되지 않았다”며 “이에 한 번 더 건의를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카드사의 지급결제 전용 계좌 운영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이 필요하다. 카드사를 종합지급결제업종으로 편입해 전자금융업무를 넓혀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과 2021년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당시 은행 업계의 반대로 입법에 실패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는 자체 계좌를 갖고 운영하고 있는데, 카드사에도 동일하게 허용해달라는 것”이라며 형평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