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UN)은 한국 인구가 2100년까지 70%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저출생 문제가 한국 ‘소멸론’까지 불러온 상황. 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 대응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개인의 동참이 강조된다. 특히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쿠키뉴스가 만나본 6명의 전문가는 모두 ‘일·가정 양립’ 환경 조성을 위기 극복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홍석철 교수 “일·가정 양립으로 가족가치 제고…사회구조개혁 필요”
홍석철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결혼 적령기 인구 다수가 본인 시간 절반을 일하는 데 사용한다. 과거 대비 맞벌이 부부도 늘고 있다”며 육아 시간 확보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육아 시간을 확보하려면 기업이 일하는 시간 일부를 할애할 수 있도록 나서야한다”면서 “일·가정 양립으로 가족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결혼과 출산을 도모하는 데 가장 큰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사회구조개혁을 이끌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홍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가 커서 청년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데, 결혼 조건을 말할 때 대기업, 수도권 자가를 따지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청년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교육개혁으로 과한 경쟁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한다”고 덧붙였다.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연구위원도 “일과 출산이 양립할 수 있는 근무환경 조성이 필수”라며 “근무형태 유연화와 가족친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한다”고 밝혔다. 기업 참여를 위해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는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유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은 “다만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기업에 페널티를 부과하면 ‘어떻게 하면 회피할까’ 궁리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만들고 성과를 입증한 기업엔 금리 인하, 정책자금 지원 등을 제공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기업 본질인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돌봄 친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 원장은 “일하는 방식을 돌봄 친화로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며 “관건은 돌봄 친화만 있어서는 안 되고, 동시에 생산 활동이 본령인 기업이 생산성 손상 없이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역할도 언급했다. 허 원장은 “돌봄 수요만 생각하고 노동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면 기업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면서 “입법을 위주로 강제하기 보다는 기업에 사회적 책무성 발휘를 호소하고, 돌봄 친화로 일하는 기업 인사관리나 기업문화를 널리 전파하는 데 힘써야한다”고 주장했다.
최영준 교수 “자녀 돌봄시간 확보…근로시간 유연화”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도 자녀 돌봄 시간 확보가 중요하다며 근로시간 유연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우리는 아이를 돌보려면 육아 휴직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국가에선 육아휴직을 쓰지 않거나 휴직기간이 짧다.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근무시간엔 열심히 일하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저녁에 일하는 문화를 없애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며 기업이 생존의 공간을 넘어서 미래 공간, 그러니까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저출생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로, 기업의 일·가정 양립 노력은 곧 ESG경영과 일맥상통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장윤제 법무법인 세종 ESG연구소장은 “출생 장려 정책을 써도 고령화한 인구구조를 대처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며 “저출생은 우리 사회가 가진 많은 문제들의 결과이기 때문에 기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주장했다.
남성이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아이를 가진 여성도 직장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만 저 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우리 사회도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장 소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며, 미래 세대 니즈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 세대 발전을 지속시키는 걸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 한다”고 말했다. 이어 “ESG와 저출생 대응 방안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언급했다.
김영미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일·가정 양립 정책의 안착을 강조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저조한 합계출산율은 정책‧정치‧공동체 실패를 의미 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수도권 집중과 급등한 집값으로 인해 끊어진 주거 사다리,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취업 경쟁 심화, 일가족 양립 어려운 노동시장 등의 정책 실패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 기업 내 저 출생 대응제도는 수주만 보면 선진국보다 뛰어난 수준”이라면서도 “실질적으로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기업, 작업장마다 달라 현장 정착이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책 도입 후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기업별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소기업 꿈도 못 꿀 일…마중물 정책 필요”
아울러 전문가들은 저출생 대응에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했다.
홍 교수는 “중소기업이 일·가정 양립을 따라올 수 있게끔 마중물을 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대기업은 과거보다는 잘하고 있는 만큼 향후 정부 재원을 더 투자한다면 중소기업에 올인을 해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 수립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유럽과 같은 나라들처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출산지원금은 좋은 시도지만 능력이 있는 기업은 가능할지 몰라도 모든 기업이 따라 할 대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중소기업 근무자가 80% 이상인 국가에선 쉽지 않고,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기업과 국가가 이런 부분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