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당시 부실 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족들은 인정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30일 오후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구청장에게 이같이 선고했다.박 구청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유승재 전 용산구 부구청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문인환 전 용산구 안전건설교통국장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상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적정히 운영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지난해 1월 기소됐다. 이런 부실 대응을 은폐하기 위해 참사 현장 도착 시간 등을 허위로 기재한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하도록 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행사)도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당시 재난안전법령에 다중 운집에 의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에 분류되지 않았고 특히 재난안전법령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규정 역시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사전대비 대책 마련 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형사 책임 물어야 할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참사 이후 대응에 대해서도 “구청 당직실에는 서울시 상황전파 메시지 등을 수신할 때까지 압사와 관련된 별다른 민원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고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 받은 사실이 없다”며 “용산구청의 상황 대처가 다소 늦은 것만으로 초기 상황 대응에 현저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박 구청장이 보도자료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배포하라고 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행사)에 대해서도 “직접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일부 허위 기재된 내용 역시 보도자료 앞뒤 맥락에 비춰 단순 오기로 보이는 등 참사로 인해 경황이 없는 실무진들의 실수가 있었거나 오류를 검증 못한 상태에서 작성 배포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의 무죄 선고에 대해 유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무죄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은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을 불인정해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찰 혼잡 경비 요청을 했거나 최소한 구청 공무원들이 골목 내 교차 통행 등 인파 통제에 나섰다면 대규모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법원의 판단은 형식적 법논리에만 매몰돼 피고인들의 무능을 무죄의 근거로 삼은 부당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오늘의 이 슬픔과 절망과 분노를 안고 끝까지 싸우겠다”며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우리는 법정에서 그리고 법정 밖에서 이들의 죄책을 끝까지 밝혀나갈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