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조직에서 일어난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내게 선배는 말했다. 사람이 모인 곳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어떤 일은 그냥 그렇게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미 벌어진 이상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와 그의 작품을 SNS에서 맹비난하는 이가 등장했을 때 생각했다. 그런 사람도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멸칭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지만, 잘못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사회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목을 위해 말을 얹는 사람은 그간 무수했다.
일부 보수단체들이 스웨덴 대사관 앞에 모여 한림원이 대한민국 적화에 부역했다고 소리치는 일도 그렇다. 앞서 지난 2000년 故(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도, 일부 야당 지지자들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수상 반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려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은 페미니즘을 지향하기 때문에 불매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달렸다. 실제로 작품을 읽었다면, 그렇게 단편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는 작가의 외모와 말투를 따라 하며 희화했다. 풍자라면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한강 작가에 대한 비난은 단순히 개인의 성공에 대한 질투나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깊은 갈등이 있다. 작품이 다루는 정치적 주제에 대한 불편함, 여성 작가의 성취를 의심하고 깎아내리려는 시선 등이 얽혀 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큰 성과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성차별과 정치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난과 분노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논의와 성찰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예술과 문학은 이러한 과정을 돕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불편한 진실을 비추며, 편견을 깨닫게 하고, 성숙한 세상을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고통스러운 역사나 사회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통해 치유와 성찰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단지 소설에만 국한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 갈등을 피하거나 왜곡하기보다는 이를 직면하고 깊이 사유하는 노력, 분열을 조장하는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사회적 공감과 이해를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비슷한 논란 속에서 방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