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도 조혈모세포를 기증할 겁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무관심한 사회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이가 있다. 쿠키뉴스 산업부 김건주(30) 기자다. 김 기자는 최근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오래전부터 헌혈을 해온 그는 94번째 헌혈하던 날, 조혈모세포 기증 안내판에 적힌 글을 봤다. ‘혈액암 환자는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라는 문장이었다. 김 기자는 “기증 희망 신청서만 써도 어떤 혈액암 환자, 가족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증 의지가 넘치던 김 기자도 망설이던 순간이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기증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 때문이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할 부모님이 생각나 잠시 주저하기도 했다.
조혈모세포란, 혈액세포를 만드는 어머니 세포를 말한다. 피를 구성하는 백혈구, 혈소판, 적혈구를 만들어낸다. 조혈모세포는 온몸에 있지만, 골수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기증자의 피를 뽑아 조혈모세포를 걸러낸다. 남은 피와 적혈구 등은 다시 체내로 돌려보낸다. 이렇게 채집한 조혈모세포는 혈액암 중 급성 백혈병 환자들이 주로 받는다. 어떤 질환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60~70% 환자들이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는다.
2023년 기준 조혈모세포 이식 대기자는 6234명이다. 1년에 800명 정도의 이식 대기자가 생긴다. 이중 이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50%에 그친다.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많은 사람이 새 삶을 얻지만, 기증을 받는 데까지 가기에 여러 난관이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 방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기증 신청을 망설이게 한다. 많은 이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여전히 골수 이식 방법으로 진행한다고 생각한다. 골수 이식은 골반에 바늘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바늘을 골수로 집어넣어 조혈모세포를 채취한다. 바늘을 여러 번 찔러야 해서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는 피를 뽑아 그 안에 있는 조혈모세포를 걸러내는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조혈모세포 기증 방식에 대한 오해로 기증 희망 신청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환경 요인도 조혈모세포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저출생·고령화 현상이 심해지다 보니 가족에게 이식받을 기회 자체가 적어진다. 조혈모세포를 기증받으려면 조직적합성 항원(HLA)이 일치해야 한다. 가족 간 일치 확률은 부모와 5%, 형제자매간 25% 이내다. 형제자매간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이 높은데 요즘은 외동인 경우가 많아 일치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김동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가족 간 유전자가 맞는 사람이 없으면 타인에게서 찾는다”며 “요즘은 타인 조혈모세포 이식이 환자들의 유일한 희망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증 희망자와 유전자가 일치해도 문제가 있다. 이식 과정에 큰돈이 들기 때문이다. 기증자의 교통비, 건강검진 비용, 입원 비용 등은 이식을 받는 사람이 전액 지불해야 한다.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가 해외에 있는 경우엔 항공권 등 기증자의 이동 비용이 추가된다. 보험이 적용되지만, 사후 지급이라 환자들이 선지불 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얀마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힛멧앙(32)씨도 ‘급성 백혈병’으로 인해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했다. 치료와 이식 과정에 거금이 들었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는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증가하려면 기증자에 대한 예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리나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기증증진팀 팀장은 “기증자 대부분은 대학생이나 직장인”이라며 “법률적으로는 입원해서 조혈모세포를 기증했을 때 유급휴가 적용이 가능하지만, 공가 처리가 되지 않아 일정 조율이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공가 처리가 되면 기증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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