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엔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의 스마트한 플레이 스타일은 코치로서의 능력을 극대화했다. 메타 분석, 냉철한 피드백 등을 통해 명코치로 거듭났다. 코치 데뷔 첫해부터 2022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지난 2024 LCK 서머에선 바라왔던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화생명e스포츠 ‘모글리’ 이재하 코치의 얘기다.
쿠키뉴스는 지난 20일 일산 한화생명 캠프원에서 이 코치를 만나 그동안의 커리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시즌 각오를 들어 봤다.
이 코치는 한화생명에서 메인 코치직을 맡고 있다. 2년 동안 ‘댄디’ 최인규 감독과 함께, 한화생명의 밴픽, 플레이 방향성을 잡았다. 이 코치는 “감독님과 호흡이 정말 좋다. 여러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제 의견을 잘 들어준다. 생활하는 데 있어서 편하게 잘 조율해 줘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2024 LCK 서머를 우승한 한화생명은 롤드컵에서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준준결승에서 중국 1시드 비리비리 게이밍(BLG)에 무릎을 꿇었다. 8강에서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 못한 이 코치에게도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높은 목표를 잡았었는데 일찍 탈락해서 굉장히 허무했다”던 그는 “메타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다. 연습 때 다양한 시도를 했었는데 결국 잘 풀리지 않았다. 한화생명이 소화할 수 있는 교전 위주 챔피언 폭이 좁았다. 질병에도 한 번씩 걸리는 등 컨디션 조절에도 실패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롤드컵 때는 오브젝트 중심 교전 메타였다. LCK 서머처럼 ‘쌍포’ 메타가 아니었다. 연습 당시 대세인 교전 중심 조합과 해왔던 쌍포 조합 중 어떤 게 맞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LPL은 원래도 교전을 잘하는 리그다. 이에 대응이 미흡했다. 8강에서는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잘하던 라인 스왑부터 실수가 나오더라”고 덧붙였다.
이 코치는 그럼에도 2024시즌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정글러 출신인 그는 2024시즌 영입된 ‘피넛’ 한왕호를 콕 집어 칭찬하면서 “노련하고 똑똑한 선수다. 한왕호가 들어온 이후 팀 운영이나 게임 방향성이 바뀌었다. 정글이 게임을 편하게 해주니 딜러진이 더 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딜라이트’ 유환중도 코칭스태프 피드백을 잘 수용했다. 정글과 서폿이 게임 내에서 지시 내용을 최대한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고 언급했다.
한화생명은 2025시즌 더 강력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4인에 롤드컵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제우스’ 최우제를 영입했다. 2021시즌에 T1 2군에서 뛴 이 코치는 당시 최우제와 자주 마주쳤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제가 캠프원에 오자마자 바로 반말을 하더라. ‘형 왔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는데”라며 웃어 보였다. 이 코치는 “우제가 2025년 키플레이어다. 얼마나 팀에 적응하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코치는 최우제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다. 그는 “우제가 데뷔하기 전에 저에게 친구 추가를 걸었다. 그때 ‘더샤이’ 강승록과 듀오를 하면서 탑 시팅을 해줬는데 그걸 본 모양이다. 우제가 ‘다음에 듀오하자’고 말했었다”고 밝혔다. 또 “T1에서는 내부 스크림을 같이 했다. 정말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한화생명에 오게 돼서 매우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제는 정말 까다로운 선수다. 우제를 만나면 탑 밴픽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제이스, 나르와 같은 사이드 픽도 잘하고 오른, 그라가스, 마오카이 등 탱거 챔피언을 다루는 능력도 뛰어나다”며 “공수 밸런스가 잘 잡혀서 밴픽적으로 까다로웠는데 이제 상대할 일이 없어 편하다”고 미소 지었다.
피어리스 드래프트가 부분적으로 도입되면서 코치진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코치는 “연습 때도 피어리스 밴픽으로 진행한다. 밴픽 구도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하고 있고, 피어리스 밴픽을 경기장에서 더 잘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어떤 코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 코치는 “인게임 피드백은 당연히 잘해야 한다. 선수와 상호 작용 또한 마찬가지”라며 “선수들에게 듬직하고 든든한 코치로 남고 싶다”고 답했다. 기본기가 탄탄한, 단단한 게임 플레이를 선호한다던 이 코치는 자신의 방향성과 가장 잘 맞는 선수로 ‘바이퍼’ 박도현과 ‘데프트’ 김혁규를 꼽았다. “박도현은 단단하면서도 실수 없는 플레이로 팀의 기둥이 돼주고 있다. 2022 DRX에서는 김혁규가 그 역할이었다”고 했다.
이 코치는 끝으로 팬들에게 “올해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마무리가 아쉬워서 팬들도 실망했을 것 같다. 롤드컵 우승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스럽다. 내년에는 올해의 문제점을 모두 보완해서 우승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