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74)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65)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이날 파기환송을 결정한 근거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옥시 등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에 대한 공동 인식이 없었다는 데 있다.
재판부는 “원심이 근거로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복합사용 피해자들에 대한 부분에 관해 파기 사유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들과 옥시 등 제품의 주 원료와 성분, 대사물질이 전혀 다르며, 이를 개발해 상품을 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결국 이 사건 제품과 원료가 다른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사망 또는 상해가 발생했다는 점만으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어떤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짚었다.
이날 파기환송 결정으로 2심 법원은 여러 제조사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피해자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한다.
다만 업무상과실치사죄의 공소시효가 7년이기에 이 사건은 면소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 옥시 측과 공범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는 경우 일부 피해자에 대한 혐의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이기 때문에 범죄 사실이 인정돼도 형벌을 내릴 수 없다.
홍 전 대표 등은 2002~2011년 인체 유해 물질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첨가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중 98명이 폐 질환과 천식 등을 앓았고, 그중 12명이 숨졌다.
국내에서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는 크게 3개다. 이 제품들은 주 원료에 따라 2개로 나뉜다. 주 원료가 CMIT·MIT인 것과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인 제품이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것은 CMIT·MIT가 들어간 제품이다.
앞서 1심은 “CMIT·MIT가 피해자들의 상해·사망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유죄로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은 “CMIT·MIT 성분과 폐 질환, 천식과의 일반적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연구들이 존재한다”면서 “제품 출시 전 안전성 검사를 수행했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품 출시 후 요구되는 관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그 피해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