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와 동결 갈림길에 섰다. 한미 금리 격차와 고환율, 경기 침체 등을 고려하면 한은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오는 25일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한은은 3.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두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했다. 하지만 1월 금통위에서는 환율 불안을 이유로 금리를 3.0%로 동결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해 관망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 정책에는 제동이 걸린 상태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개월 만에 3%대로 복귀하면서다. 이는 시장 전망치(0.3%)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무역장벽이 높아지면 물가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까지 나서 금리 인하 기대를 꺾었다.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열린 연방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인플레이션이 목표(2%)를 웃도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오는 25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은의 셈법은 복잡해질 전망이다. 현재 위축된 소비·투자 등 내수를 고려하면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만 단독으로 금리를 인하한다면, 한미 기준금리 차이는 역대 최대 폭으로 벌어질 수 있다. 한국 기준금리(3.00%)는 미국보다 이미 1.50%포인트(p) 낮다. 한·미 금리역전은 외국인 투자 자금 이탈로 이어져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
누적된 고환율 여파로 국내 물가 상승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점도 변수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를 기록하며 5개월 만에 목표치인 2%대를 웃돌았다.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류가 7.3% 올라 지난해 7월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한은이 금리 인하로 돈을 풀 경우 강달러 현상이 심화해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통화정책 변화의 적절한 시기와 강도를 정하는 것은 금통위원들에게 중요한 문제”라며 “원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면 불에 기름을 끼얹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를 내린다고 내수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1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소비 부양 효과는 내년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면서 “한국만 단독으로 금리를 인하하면 환율 불안정만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미중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 중국이 맞불 조치로 위안화를 평가절하할 것이다. 한국도 그 시기를 대비해 ‘금리인하’ 카드는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당장 경기 부양 필요성이 큰 만큼 2월 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2%에 그쳤다. 특히 4분기 성장률은 전망치 0.5%를 크게 밑돈 0.1%를 기록했다. 건설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비상계엄 12·3 비상계엄 여파로 민간소비가 둔화한 탓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올해 성장률 예상으로 JP모건이 1.2%, 캐피털이코노믹스가 1.1%를 제시했다.
복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의 ‘2월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캐나다와 멕시코, 유로존은 관세 부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에 기준금리 인하를 지속하고 있고,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영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금리 인하 및 세계국채지수(WGBI) 수급 호재로 인한 금리 하락 방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2월 인하 및 연내 2.25%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금리를 인하하면 오히려 환율이 안정될 수 있다는 이례적인 주장도 나왔다. 상반기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서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역전 폭을 줄여야 환율이 안정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6일 보고서에서 “금리 인하를 통해 경제 활력을 높이고 펜더멘탈(기초체력)을 강화해 환율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며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방향성이 하강에서 상승으로 전환될 경우 성장률이 높아지고,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상승하게 돼 외환시장도 점차 안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