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법 개정안을 놓고 금융당국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우선이라는 입장인 반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직을 걸고 지키겠다”며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 수장들은 국회를 통과한 상법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해 야권 주도로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과 재계는 주주 소송 증가로 기업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하자는 목소리를 내왔다. 반면 이복현 금감원장은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반대한다며 강력한 의사를 표해왔다. 지난달에는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의견 충돌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지난달 26일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정부가 그간 추진하던 자본시장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이날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주주 권익 보호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상법 개정안은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이 원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정반대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부의 주주가치 보호 의지가 의심받을 것이고 이는 주식·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거부권 반대 의사를 밝혔다.
28일에는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보냈다. 사실상 정부 방침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금감원은 의견서에서 “상법 개정안은 장기간의 논의를 거쳐 국회를 통과한 만큼, 재의요구권 행사는 비효율적이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주주 보호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며, 사실상 재논의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돌연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과 함께 매주 개최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에도 불참했다. 외부 일정이나 특별한 사정 없이 F4 회의에 불참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원장의 거취 문제에도 관심이 쏠린다. 공식 임기를 약 두 달 남긴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사의 표명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이 ‘직을 걸겠다’는 표현까지 쓴 만큼, 이번 사태가 거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사의 표명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자연스럽게 거취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