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17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국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발 관세 충돌에 따른 성장 우려와 고환율, 가계부채 등 복합적 변수들이 맞물리며 통화정책의 운신 폭은 그 어느 때보다 좁아진 상황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오는 17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도 추가로 금리를 낮췄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2.75% 수준이다.
최근 국내 경기는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와 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조기 대선 정국, 대규모 산불 등 악재까지 겹치며 민간 심리가 더욱 얼어붙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은 한국의 올해 1%대 성장률 전망마저 흔들고 있다. 한은이 제시한 경제성장률 ‘비관 시나리오’(1.4%)를 밑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월 기준 1.5%까지 낮아졌던 성장률 전망치는 1% 초반, 나아가 0%대 진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웰스파고 등 주요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이번 관세 정책으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연간 성장률이 최대 1.0%포인트(p)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경제 둔화 속에서도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환율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연 4.25~4.50% 수준으로 동결하며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현재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은 1.75%p에 달한다. 한국이 ‘나홀로 인하’에 나설 경우,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이 가속화될 수 있다. 원화 가치는 최근 1500원 선까지 위협받고 있다. 한은으로선 연준의 정책 기조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가계부채도 부담이다. 최근 강남3구를 중심으로 집값이 뛰며 주택거래량이 폭증했다. 둔화세를 보이던 가계부채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가계부채 추이는 한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주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다. 주택거래량 증가는 1~2개월 시차를 두고 가계부채 증가에 영향을 미쳐왔다.
시장에서는 이번 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 등으로 당장 인하 기대는 낮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고환율과 물가 압력, 미국의 금리 정책을 고려하면 한은이 연속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성장을 더 우선시 할 것”이라며, 한은이 4월·7월·10월에 각각 25bp(1bp= 0.01%p)씩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5월 금통위 회의 날짜(5월29일)가 조기 대선 사전투표기간과 겹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추가 금리 인하를 한다면 4월을 더 선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보다는 5월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의견도 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총 3차례 인하(2·5·8월 인하)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면서도 “5월 이후 금리 인하 시점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추경 규모와 시점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