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약 18조원의 ‘마이너스통장’을 끌어쓴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기획재정부는 이번 차입은 새 정부의 재정 기조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6월 한 달 간 한은에서 17조9000억원을 일시 차입했다.
한은의 대정부 일시 대출제도는 시중은행에서 개인이 사용하는 ‘마이너스 통장(신용한도 대출)’과 비슷한 개념이다. 세입과 세출 시차가 발생해 정부의 재정집행이 어려울 때 일시적으로 자금을 융통하는 수단이다. 정부가 일시 대출제도를 많이 이용할수록 예상보다 세입이 걷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박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상반기 말 한은으로부터 빌린 누적 대출은 88조6000억원이다.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91조6000억원)보다 3%가량 줄었다. 대선 기간이었던 5월에 대출이 없었던 영향이 컸다. 정부의 월별 대출금은 △1월 5조7000억원 △2월 1조5000억원 △3월 40조5000억원 △4월 23조원 △5월 0원 등이다. 앞서 정부는 4월 말 기준 기존 대출 55조원을 모두 상환했다. 이에 따라 6월 말 기준 대출 잔액은 새로 빌린 17조9000억원이 전부다.
기획재정부는 일시 차입이 세입과 세출 집행의 시기적 불일치를 보완하기 위한 정상적 재정 운영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측은 설명자료를 내고 “6월은 통상적으로 세입이 적은 달로 매년 지속적으로 한은 일시 차입을 사용해왔다”며 “현 정부의 재정 기조나 연간 세수 결손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금이 확보되는 7월 이후에는 일시차입금을 상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만큼, 세수 결손이 반복될 경우 한은 일시대출이 상시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시대출 규모가 커지면 시중 유동성이 과도하게 공급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회나 국민이 재정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은 차입의 경우 실시간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한은이 일시차입금의 부대조건을 명시하며 관리하는 점도 이같은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월 금통위서 의결한 ‘2024년도 대정부 일시대출금 한도 및 대출조건’을 보면 금통위는 부대조건에 ‘정부는 일시차입금 평잔(평균잔액)이 재정증권 평잔을 상회하지 않도록 관리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새로 추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