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자 가운데 건설현장 근로자가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사와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건설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질환 산업재해자 58명 중 건설현장 근로자가 31명(53.4%)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건설업이 폭염 등 악천후에 취약한 업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현장에서도 열사병 사고가 벌어지고 있다. 7일 경상북도 구미시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출신 20대 하청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발견 당시 체온은 40.2도였다.
열사병은 법적 책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22년부터 열사병이 중대재해처벌 대상에 포함되면서 1년에 3명 이상 열사병 환자가 생기거나 1명이라도 사망하면 법적 책임을 묻게 됐다. 검찰이 2022년 대전시 한 건물 신축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하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원청 대표이사가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지 않고 중대산업재해를 대비한 매뉴얼도 구비하지 않는 등 현장 근로자들을 위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건설사들도 폭염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안전보건센터 내 ‘혹서기 비상대응반’을 구성해 실시간 안전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현장별 온열질환 예방 시설 구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전국 현장의 일일 단위 기상 모니터링을 통한 폭염 단계별 작업 주의 사항을 안내하고 휴식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DL이앤씨는 체감온도 35도를 넘으면 시간당 15분 이상 휴식하고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은 오후 2~5시 옥외작업을 자제하는 등 내용을 담은 온열질환 예방관리 지침을 수립했다. 아울러 기상청의 기온 통보나 폭염특보를 오전과 오후 1회 이상 확인하고 주요 시간대에 온도를 시간 단위로 측정해 온열질환 예방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건설사들은 얼음조끼, 쿨토시, 아이스팩 등 무더위 대응물품 제공, 냉방시설을 갖춘 휴게시설과 샤워실 설치, 탈수 방지를 위한 식용 소금이나 포도당, 이온음료 비치 등도 진행하고 있다.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예방 의무를 지는 근로자 건강장해 목록에 ‘폭염·한파에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추가하고 대책을 수립하도록 규정했다. 보건 조치 의무 대상이 되는 폭염 작업을 체감온도 31도 이상이 되는 작업 장소에서의 장시간 작업으로 규정했다. 폭염 작업이 예상되는 경우 근로자가 주로 일하는 장소에 온도‧습도계를 비치해 체감온도를 측정‧기록한 후 그해 말까지 보관하도록 했다.
건설노조는 정부의 폭염 대응지침 이상의 ‘폭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폭염 단계별 대응 가이드라인을 통해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매시간 10분 그늘(휴식공간)에서 휴식, 35도 이상이면 매시간 15분 이상 그늘(휴식공간)에서 휴식과 무더위 시간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옥외 작업 중지, 38도 이상이면 매시간 15분 그늘(휴식공간)에서 휴식과 무더위 시간대 재난‧안전관리 등에 필요한 긴급조치 작업 외 옥외 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지난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건설 노동자들은 상시적으로 열사병에 노출돼 있다”며 폭염법 제정을 촉구했다. 폭염법은 △폭염기 건설현장 사업주 체감온도(온습도) 관리 △폭염기 건설현장 휴게실, 그늘막 설치 확대 강화 △폭염기 건설현장 샤워실, 탈의실 등 세척시설 설치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다.
건설 업계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세중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2시간에 20분씩 휴식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자주 쉬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더운 날씨에 2시간 동안 계속 작업하는 게 체력적으로 더 힘들다. 게다가 건설현장엔 쇠파이프, 망치 같은 금속 도구들이 달궈져서 노동자들의 체감온도를 더 높인다”고 언급했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며 “현장에 가면 천막 하나 치고 의자 몇 개 놓은 걸 휴게실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허울뿐인 시설로는 폭염을 견디기 어렵다. 기후위기로 날씨가 점점 더 뜨거워질 텐데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