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로 결제를 해보려 했는데, 키패드를 누르는 사이 계속 엉뚱한 메뉴로 넘어가더군요.”
지난 11일 김포공항에서 만난 이호철(71·경기 안성) 씨는 제주항공 항공권을 결제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어려움을 겪었다. 해외여행 경험이 적지 않았지만, 온라인 예약·결제 절차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었다. 청각과 반응 속도도 예전 같지 않아, 결국 ‘직접 얼굴 보고 결제하는 게 제일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이 씨처럼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과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저가항공사(LCC)의 하늘길 장벽은 여전히 높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같은 풀서비스항공사(FSC)는 오프라인 예약 발권센터를 운영해 직접 손님을 맞이하지만, 진에어·제주항공·티웨이 같은 저비용 항공사는 비용과 구조적 한계로 이런 센터를 두기 어렵다.
LCC는 온라인 예약이나 여행사를 통한 예매만 가능한데, 여행사 이용 시엔 더 비싼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 왜 저비용 항공사는 오프라인 발권센터를 두지 않는 걸까. 답은 LCC의 태생적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
저렴한 항공사, LCC의 태생적 한계?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전공 교수는 “만약 LCC가 FSC 같은 오프라인 창구를 운영한다면 더 이상 저렴한 항공사라는 LCC의 본질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저비용항공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값싼 운임을 유지하기 위해 인건비·임대료 같은 고정비를 최소화하는 구조다.
황만종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의 ‘항공사 서비스품질과 고객만족과의 관계에서 자아표현성 및 FSC/LCC의 조절 효과(2015)’ 연구에 따르면 국내 저비용항공사의 비용 구조에서 노무비가 33%, 판관비(판매비·관리비)가 15%를 차지한다. 판관에는 인터넷을 통한 직접 판매와 낮은 글로벌 유통시스템 이용료가 포함된다. 여기에 오프라인 발권센터를 운영하면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가 더해져 비용 비중이 커지게 된다. 결국 LCC 특유의 저비용 구조와 가격 경쟁력 유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LCC는 유통 단계를 줄여 승객이 홈페이지·모바일 앱에서 직접 예매·발권하도록 설계됐고, 이는 디지털 전환 흐름 속에서 고착화됐다.
해외에선 저비용 항공사가 도심 오피스 운영하기도
해외에서는 일부 LCC가 오프라인 창구를 운영한다. 베트남의 LCC 항공사인 비엣젯은 호찌민 도심에 ‘도심 체크인’ 티켓 오피스를 운영해 공항에 가지 않고도 발권과 수하물 수속을 마칠 수 있게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항공사 에어아시아는 쿠알라룸푸르 KL 센트럴역에 세일즈 오피스를 두어 현장 예약 및 고객 상담을 지원한다. 필리핀 항공사 젯스타는 마닐라 도심에 예약 오피스를 운영하며 발권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김 교수는 “전형적인 LCC는 공항 외 사무실을 최소화하고, 모바일 판매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영업 비용을 줄이는 구조”라며 “그럼에도 해외 항공에서 도심 오피스를 운영하는 이유는 브랜드 인지도 제고, 마케팅과 영업 기능 수행, 현금 결제 비중이 높은 신흥국 시장 특성, 노년층 대상 신뢰 확보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해외 LCC의 오피스에서는 단순 발권 외에도 여행상품·호텔·보험·렌트카 패키지 등 부가 상품을 판매하며 추가 수익을 창출한다. 이런 구조는 고정비를 마케팅·영업 수익으로 상쇄할 수 있지만, 국내 LCC 시장은 규모와 수익 구조가 달라 같은 전략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디지털 약자, 항공권 예약 벽 높은데…대체 서비스는 ‘그림의 떡’
국내 저비용 항공사는 오프라인 센터 운영 대신 교통약자를 위해 여러 대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진에어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우선 출국 서비스나 휠체어 제공, 탑승국 동행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스타항공도 우선 발권 서비스와 교통약자 고객을 위한 우선 좌석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에어부산은 지난달부터 인천국제공항에 교통약자 우선 수속이 가능한 교통약자 전용 카운터를 운영 중이며, 타 공항에도 순차적으로 오픈할 계획이다. 티웨이와 제주항공은 전화 예약 센터를 운영 중이며, 전화를 통해 예약 및 발권이 가능하다.

다만 이런 서비스는 항공권 구매 이후에야 이용할 수 있어, 발권 과정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년층·디지털 소외계층에는 여전히 장벽이 남는다. 김 교수는 “이런 LCC의 서비스는 디지털 약자들에게 실효성이 낮다고 본다”며 “디지털 약자처럼 맞춤형 상담이 필요한 고객에게 이런 서비스는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 설명했다.
국내 한 LCC 항공사 관계자는 “LCC는 오프라인 발권 센터를 운영하긴 어렵다”며 “비용과 인력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운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LCC 공동 창구 및 제도 지원 필요해
전문가들은 항공사·정부·공항공사가 역할을 나눠야 한다고 제언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홈페이지를 통해 “항공 여행은 모든 승객이 접근 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항공사·공항·정부 등 모든 이해당사자가 여행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지털 취약계층을 포함한 모든 이용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항공업계의 과제인 셈이다.
김 교수는 “비용 때문에 문제라면 공항 외 지역에 LCC가 연합해 공동 창구를 만들고,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며 “정부는 LCC에 제도와 예산을 지원하고, 공항공사는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