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틀어쥔 배터리 공급망…K-미래차 기반이 흔들린다 [K-산업 구조中심①]

중국이 틀어쥔 배터리 공급망…K-미래차 기반이 흔들린다 [K-산업 구조中심①]

‘탈(脫)중국’을 외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K’라는 이름 아래 한국 산업은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중국의 부품·소재·자본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 원료에서 태양광, 통신장비, 드론, 생활 소비재까지, 산업 곳곳에 스며든 중국 의존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쿠키뉴스는 ‘K-산업 구조中심’를 통해 ‘탈중국’의 구호와 ‘종속’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추적했다. 기술 자립을 내세운 산업정책의 그늘을 해부하고, 산업 자립의 구호가 실질적 공급망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을 짚는다. <편집자주>

기사승인 2025-12-01 06:00:11 업데이트 2025-12-01 09:10:23
1994년 중국 선전에서 배터리 회사로 시작한 BYD. BYD코리아는 지난 1월 한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연합뉴스

한국 미래차 산업의 핵심인 배터리 소재와 부품의 중국 의존도가 고착화되면서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과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집중된 공급망 구조는 가격 변동과 수급 차질은 물론, 미·중 갈등 같은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산업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벗어나 차세대 배터리까지 아우르는 중·장기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韓, 배터리 핵심 소재 중국 의존 ‘심각’ 

1일 업계에 따르면 NCM(니켈‧코발트‧망간 기반 삼원계) 양극활물질의 올해 전체 수입량 중 중국산 비중은 75.7%에 달한다. 양극재의 핵심 원료인 전구체와 수산화니켈은 의존도가 더욱 높다. 전구체는 2020년 89.1%에서 올해 94.1%로 상승했고, 수산화니켈 역시 올해 중국 수입 비중이 96.4%에 이른다. 음극재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천연 흑연 97.6%, 인조흑연 98.8%가 중국 공급망에 묶여 있다. 사실상 배터리 소재 전량을 중국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핵심 소재가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가격 변동과 공급 불안의 충격이 고스란히 국내 산업에 전해진다. 실제로 최근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 가격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광해광물공단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이달 중국 현물 시장의 탄산리튬 1kg당 가격이 90.0위안(1만8724원)을 넘어섰다. 올해 최저가를 기록했던 지난 6월(57.7위안) 보다 약 56% 증가한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소재일수록 가격과 공급 안정성의 변동 가능성이 더 크게 나타난다”며 “기업들이 생산 안정성과 비용 구조를 지키기 위해 대체 공급망 확보와 신규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 의존이 장기화되면서 미·중 갈등 등 외교·정치 변수에 대한 취약성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산 광물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납기 지연, 통관 절차 강화,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조금만 국제 정세가 흔들려도 공급 일정과 비용 구조가 즉각 영향을 받는다”며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 의존도를 절대적으로 줄여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재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첨단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비정상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광해광업공단의 신규 해외 자원 개발을 재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60일 수준인 비축 물량 확대 및 폐배터리 등 재자원화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터리 3사 공급망 다변화 추진…현실은 제자리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망이 산업 전반의 리스크로 부상하면서 국내 배터리 3사도 탈중국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핵심 원료의 대부분이 중국에 집중된 구조적 한계와 대체 공급망 확보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시간 부담 탓에 다변화 작업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공급망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대규모 양산에 돌입했으며, 북미 주요 고객들과 공급 협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 5월에는 제너럴모터스(GM)와의 세 번째 합작 공장인 ‘얼티엄셀즈 3기’ 인수를 완료했다.

삼성SDI도 북미‧유럽 중심으로 공급망을 넓히고 있다. 최근 독일의 상업용 ESS 전문 제조업체인 테스볼트와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테슬라와도 10GWh 수준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SK온 역시 북미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플랫아이언 에너지 개발에 최대 7.2GWh 규모 ESS를 공급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플랫아이언 외에도 다수의 미국 고객과 최대 10GWh 규모의 ESS 공급 계약을 논의 중이다.

CATL이 공개한 낙스트라 배터리. AP 연합뉴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공급망 다변화의 속도는 물론, 대체할 수 있는 광물과 조달 국가의 폭 자체가 중국을 대체하기엔 한계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이 배터리 핵심 광물의 정제부터 소재·부품 생산까지 전 단계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 비(非)중국권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광물 종류와 생산 역량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는 막대한 설비 투자와 품질 검증이 필요하다. 캐즘 이후 국내 소재 기업들이 실적 부진을 겪으며 투자 여력이 줄어든 점도 다변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다. 이미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 업체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과 생산량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도 쉽지 않다.

실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 업체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분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1~9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은 811.7GWh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지만,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16.9%로 3.3%포인트(p) 하락했다. 반면 CATL은 36.6%로 1위를, BYD는 17.9%로 2위를 차지하며 압도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미중 갈등 심화와 미국의 중국 견제 강화 속에서, 중국이 사실상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망을 장악한 구조가 쉽게 바뀌기는 어렵다”며 “기업들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노력하고 있지만, 캐즘 이후 소재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신규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서 공급망 다변화 속도가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탈중국 절실…K-미래차 산업 과제는?

전문가들은 ‘탙(脫) 중국’ 전략에 속도를 높이고, K-미래차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중국 중심의 배터리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지 않으면, 원자재 확보부터 배터리 완제품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탈중국’을 기준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도 미래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非)중국 소재 확보, 해외 생산기지 다각화,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 등 전방위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의 세제 지원(AMPC) 구조와도 직결된다. 미국 정부는 현지에서 생산한 배터리 1kWh당 최대 4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 정책 개편을 통해 탈중국 요건을 강화했다. 중국 소재 위주로 배터리를 제조할 경우 AMPC를 받을 수 없게 되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상당한 규모의 세액 혜택을 잃을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非)중국 소재 비중은 △2026년 60% △2027년 65% △2028년 70% △2029년 80% △2030년 이후 85%다. 그러나 국내 전구체·음극재 등 주요 소재의 중국 의존도는 90%에 달한다.

황 위원은 “단순히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정책적 유인과 함께 기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설비 투자, 기술 확보, 글로벌 협력 체계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배터리 소재의 탈중국화를 위해 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위원은 “정부는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R&D 지원 확대 등 전방위적인 지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정책적 지원과 산업 전략이 함께 맞물려야 K-미래차 산업의 안정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민재 기자
vitamin@kukinews.com
송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