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급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지만, 충전 환경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세종·울산·광주 등 일부 지역은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지만, 제주·인천·전남 등에서는 충전 대기와 접근성 문제로 이용자 불편이 반복된다. 같은 전기차를 타도 충전 편의성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셈이다.
세종·울산은 ‘여유’, 제주·인천은 ‘포화’세종은 인구 규모가 작고 신도시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공공 충전소 설치가 용이한 덕에 전국에서 가장 높은 차충비(전기차 대비 충전기 비율, 0.82기)를 기록했다. 울산 역시 산업단지 중심 도시 구조가 인프라 확충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울산시는 환경부와 연계해 민간 충전사업자와 협약을 맺고 공모사업 방식으로 충전기 설치를 지속 확대해 왔다.
울산시청 관계자는 “자차 비율과 내연기관차 비중이 높은 울산 특성상 전기차 보급을 빠르게 늘리기 위해 충전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필요성이 컸다”며 “최근 전기차 보급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충전 시설도 이에 맞춰 최대한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제주도의 상황은 정반대다. 국토부와 기후부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전기차 등록대수가 5만8884대로 단일 광역단체 기준으로 가장 많지만, 충전기 확충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차충비는 0.20기로 전국 최하위에 머물렀다.
인천도 제주 다음으로 낮은 차충비를 보인다. 인천시청 관계자는 “충전기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전기차 등록 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충전기 설치 대수는 전국 4등 정도로 높은 편이지만, 전기차 등록 대수가 전국 3위 수준”이라며 “차량 증가 속도가 충전기 확충 속도를 앞지르다 보니 차 대비 비율이 낮게 나타나는 구조이며,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간·전력·토지…지역별 ‘구조적 장벽’도 존재
충전 인프라 격차는 단순한 보급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별 구조적 조건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도시 특성상 충전기 설치가 가능한 공간 자체가 제한적인 만큼, 보조금 지원을 통해 설치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남 등 농어촌 지역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전남도는 “충전기 설치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부지 사용 동의”라며 “토지 소유주의 동의 없이는 설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충전사업자들의 수익성 악화도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별로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충전기 사업자들이 시장을 다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사업자들이 신청하지 않아, 예산도 남는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급 많은 곳 집중…지역 불균형 가속
전문가들은 지역 간 차충비 격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전기차 보급 구조’를 지목한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가장 큰 변수는 지역별 전기차 보급 대수”라며 “전기차가 많이 보급된 대도시와 수도권에는 충전기도 함께 몰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지자체의 재정 여력과 부지 확보 의지, 노후 주택과 농가 지역의 전력 인프라 한계도 충전기 확충 속도에 영향을 준다”며 “총량 확대보다 ‘전기차가 많은 곳에 적재적소로 설치하는 구조’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충비 격차가 지역 소득 구조와도 연결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결국 전기차 수요의 차이”라며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농어촌 지역은 전기차 판매 자체가 더디고, 그 결과 충전 인프라도 정체되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비 보조금은 인구 비례로 배분되다 보니 서울은 항상 부족하고, 지방은 전기차 수요 대비 보조금이 남는 지역도 반복적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환경 차이가 결국 전기차 전환 속도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대, 충전기 123만기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 교수는 “충전이 불편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전기차 구매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며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 충전기 밀도가 낮으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맞춤형 보조금 체계’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주요국은 소득 수준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과 인프라 지원에 차등을 둔다”며 “우리처럼 동일한 기준을 전국에 적용하면 결국 고소득·도심 중심으로만 전기차와 충전기가 몰리고, 지역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차 가격이 충분히 낮아지기 전까지는 지역·소득 기반의 맞춤형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