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워도 끝이 없다...” 죽음의 덫 줍는 다이버들

“주워도 끝이 없다...” 죽음의 덫 줍는 다이버들

강원 해안가서 '플로빙' 활동하는 청년 감자들
전국에서 연간 5000여t 폐어구 그대로 방치

기사승인 2025-05-06 06:00:08
해양정화 활동 단체 '물 좋은 감자들' 소속 회원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 일원에서 수중 해양정화 활동을 마친 뒤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얽히고설킨 폐어구 3채, 에기(흰오징어를 낚는 일본의 전통 어로 도구) 8개, 페트병 4개, 삭은 장화, 단조 팩, 스티로폼 조각, 장난감 삽, 구슬 장식, 타프 꼬리표, 일회용 라이터.

바다는 매일 같이 쓰레기를 삼킨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는 일은 누군가의 하루를 고스란히 앗아간다. 지난 27일 '물 좋은 감자들(이하 감자들)'은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변 일원에서 수중 해양정화 작업을 벌였다. 잠수복을 입고 마스크, 스노클, 오리발을 갖춘 채 물에 들어간 회원 이유(39), 김신복(35), 박민정(30) 씨는 43분 남짓 프리다이빙을 하는 동안 위 10여 종의 해양쓰레기를 수거했다.

감자들은 강원도 동해안의 고성, 속초, 양양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프리다이빙·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바다를 정화하는, 이른바 '플로빙(플로깅과 다이빙의 합성어)'을 실천하는 청년단체다. 2023년 5월부터 활동해 온 이유 씨는 "활동 자체가 스포츠에 가깝다 보니 즐기면서 한다"며 "우리가 가는 곳에서만 주워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감자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 일원에서 수중 해양정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감자들 소속 김신복 씨가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 일원에서 수중 해양정화 활동을 마친 뒤 폐어구를 어깨에 짊어진 채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에 해양정화 활동 단체 '물 좋은 감자들' 소속 김신복 씨가 만든 물고기 모양 쓰레기 더미가 놓여 있다.

이날 감자들은 죽도 남쪽 바위에 얽히고설킨 폐어구 3채를 수거했다. 폐어구는 조류에 휩쓸려 표류하다가 해안가 바위에 걸린다. 한곳에 정착한 폐어구는 바위에서 쉼 없이 일한다. 물고기가 어구에 갇혀 그대로 썩어 들어간다. 그렇게 썩은 사체가 미끼가 돼 다른 해양생물을 끌어들이는 '죽음의 덫'이 된다. 악순환이다. 죽음의 덫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온 감자들 멤버 김 씨는 모래사장 위에 그것을 펼쳐 물고기 모양을 만들었다. 일부만 건져 온 데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텐트용 끈과 폐어구가 얽혀 끊어낼 수밖에 없다"며 "위치를 봐뒀으니, 여름에 서울에서 다이버들이 오면 함께 다시 가볼 것"이라고 말했다. 감자들이 건져 온 폐어구 3채는 바위에 엉긴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폐어구로 인한 수산자원 피해량을 연간 9만500톤, 약 4000억 원대로 추산한다. 폐어구나 밧줄 등이 선박 스크루에 감겨 발생하는 사고는 연간 378건이다. 나일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폐어구는 완전히 삭으려면 500년 이상이 걸린다. 그사이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에 퍼진 후 해양 생태계 피라미드를 타고 인체까지 영향을 미친다. 납으로 만들어진 어망의 추는 해수에 독성을 퍼뜨리기도 한다.

해양정화 활동 단체 '물 좋은 감자들' 소속 회원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 일원에서 수중 해양정화 활동을 마친 뒤 수거한 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에서 해양정화 활동 단체 '물 좋은 감자들' 소속 회원들이 직접 수거한 쓰레기들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폐어망은 페트병 같은 쓰레기 뿐만 아니라 물고기 등 바다의 생명들까지 끌어들이는 늪이 된다.
에기(흰오징어를 낚는 일본의 전통 어로도구)는 모래사장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쓰레기 중 한 예다. 날카로운 데다 쉽게 녹이 슬어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정부는 예산을 들여 해양쓰레기 수거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조업 중 어선에서 유실되거나 버려지는 폐어구는 해마다 약 3만8000톤에 이른다. 이 가운데 수거되는 양은 3만3000톤에 불과해 약 5000톤이 바다에 그대로 남는다. 연근해에서 수거되지 못한 폐어구는 조류를 따라 얕은 연안으로 떠밀려온다. 플로빙이 필요한 이유다.

정작 감자들 멤버 이 씨는 줍는 행위 자체가 해양쓰레기를 줄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고 강조한다. 그는 "뒤돌아서면 쓰레기가 생긴다"며 "얼마 전 돌았던 해안가를 다시 돌았는데 폭죽 탄피만 139개가 나왔다"고 말했다. 줍는 사람은 적은데 버리는 이들은 너무 많다.

정부도 바다에 유실된 것을 수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던 기존 방식을 개선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9월, 폐어구가 만들어져 버려질 때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며 아래 3가지 방침을 밝혔다. △폐어구의 처리 장소와 결과 등을 기록하는 어구관리기록부 제도를 도입해 해상에서 불법투기를 사전에 방지한다. △현재 통발 어구에 시행 중인 보증금제 대상을 폐어구 발생량이 많은 자망과 양식장 부표로 확대한다. △민간기업 ESG사업과 연계해 국내외 환경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수거 사업을 지원한다.

해양정화 활동 단체 '물 좋은 감자들' 소속 회원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 일원에서 수중 해양정화 활동을 앞두고 올해 첫 개해제(다이빙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를 갖고 있다.
해양정화 활동 단체 '물 좋은 감자들' 소속 회원들이 지난 27일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 일원에서 수중 해양정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감자들은 올해 첫 다이빙을 조금 이른 시기에 시작했다. 이날 오전 10시, 바다에서 사고 없이 활동하길 바라는 '개해제'를 열고 바다 신께 안녕을 기원했다.

늦봄의 바다는 수온은 영상 10도 남짓, 아직 차다. 물에 몸을 맡기자 숨은 짧아지고 손끝은 금세 무뎌진다. 짙은 고요 속, 바다는 조용히 인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짧은 숨에 비해 덫은 무겁다. ‘잠깐의 숨, 짧은 망설임’ 끝에 감자들은 덫의 일부만 건져 올리고 물 위로 올라온다. 그미처 끌어올리지 못한 잔해들은 여전히 바다속에 남아 다음 다이버를 기다린다.

이유 씨는 다이빙을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조심스레 체념을 내비쳤다. 자신의 플로빙이 결국 퍼포먼스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었다. 바닷속 3만8000여 톤 앞에서 감자들의 기여는 모래알처럼 알량하다. 그럼에도 행동하는 이들의 존재는 위안이 된다. 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모래사장을 이루듯, 작은 관심이 모여 정부의 방침을 바꾼 것처럼, 감자들의 꾸준한 행동은 강원도 어딘가의 해안가에서 오늘도 조용히 빛나고 있다.

고성=유희태 기자

유희태 기자
joyki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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