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선동열 감독이 선발보다 강한 구원진으로 2005, 2006년 연속 삼성의 우승을 일궈낸데 이어 김성근 감독이 일명 ‘벌떼 마운드’로 2007, 2008년 SK의 연속 우승을 거머쥐면서 불펜 야구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특히 올 시즌 들어 타고투저로 선발진이 예년만 못한데다 특급 소방수 역시 부족한 상황에서 경기의 허리를 책임진 중간계투는 승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됐다.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두산의 힘도 바로 중간계투다. 두산은 김선우, 김상현, 정재훈, 홍상삼, 금민철 등 5명의 선발진 능력만 보면 하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고창성, 임태훈, 이재우 등 3명의 중간계투와 마무리 이용찬이 맹위를 떨치면서 SK와 1, 2위 싸움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야구 팬들은 네 선수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킬(KILL)’ 라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페넌트레이스 일정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두산의 중간계투 요원 가운데 고창성이 평균자책점 1.91에 3승2패 7홀드, 평균자책점 2.25의 임태훈은 8승1패와 1세이브 4홀드, 이재우는 평균자책점 2.45에 2승1패 8홀드를 기록하고 있다. 임태훈의 경우 중간계투로만 나와 김광현, 송은범(이상 SK)과 함께 다승 공동 1위를 달릴 정도다. 5명의 선발진이 올린 승수 17승과 비교할 때 이들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SK가 지난해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역시 중간계투 때문이다. SK는 우타자가 강한 타순에 조웅천과 윤길현을 투입하고 좌타자가 강한 타순에는 정우람·이승호·가득염을 투입했다. 여기에 선발이 무너질 경우 롱 릴리프(여러 이닝을 던지는 중간계투) 요원 김원형까지 중간계투 왕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조웅천과 윤길현이 부상을 당했고 정우람, 김원형, 가득염까지 부진하면서 SK는 시즌 초반 총체적 난국에 빠지기도 했다. 다행히 선발진에서 김광현 외에 송은범과 고효준이 기대 이상을 해주는데다 김성근 감독이 제2선발이던 채병용을 중간계투로 돌리면서 위기를 돌파했지만 예년 같은 위력은 없다.
이외에 삼성은 타선의 부조화와 선발 투수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우완 정현욱과 좌완 권혁이라는 투톱 셋업맨 덕분에 4위를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두 중간계투 요원에 이어 특급 마무리 오승환으로 이어지는 불펜은 여전히 다른 팀에게 위력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선발 마운드가 빨리 붕괴되고 마무리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중간계투의 부담이 커지다 못해 혹사로 이어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팬들이 삼성의 정현욱이나 한화의 양훈 등 불펜 투수들에게 ‘노예’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것은 웃지못할 현상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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