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발언을 했다. “그동안 많은 의견을 수렴했고, 연구 검토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조만간 대국민담화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오늘 회의에선 국가재난안전제도를 어떻게 정착시킬지 집중 논의할 겁니다.”
채 1분도 안되는 모두발언으로 개의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이 이렇게 짧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남긴 적은 없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국정 현안 하나하나 세세하게 언급했던 평소와 전혀 달랐다.
이렇게 시작된 국무회의는 낮 12시50분까지 이어졌다. 먼저 세월호 관련 안전대책에 대한 난상토론이 박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사이에 진행됐다. 장관들은 돌아가면서 현재의 재난대책 문제점과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잘못 등을 가감 없이 발언했고, 박 대통령은 주로 들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취임 초기에
공직 기강을 다잡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을 얘기한 바 있다. 장관들은 박 대통령의 회한만큼이나 깊이 자아비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라는 얘기도 오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기 부처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 정부 전반에 나타난 문제점을 서로 지적하기도 하고, 왜 그런 문제를 스스로 고치지 못했는지 반성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회의 뒤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오늘 국무회의 토론은 세월호 사후대책과 안전대책, 공직사회 개혁방안 등에 대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민 대변인은 이어 “무슨 방안 같은 걸 서면으로 돌리고 이를 발표하는 식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새로운 대책을 어느 장관이 꺼내면 이를 놓고 다른 장관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중간 중간 장관들의 견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국무회의 때보다 훨씬 말수가 적었다는 전언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조만간 발표할 대국민담화의 방향과 가닥을 잡겠다는 결심이 선 듯 했다는 것이다. 담화엔 본인의 진솔한 사과와 함께 국가재난안전 마스터플랜,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난상토론으로 점심시간도 넘긴 국무회의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기초연급법 관련 안건을 10분 만에 만장일치로 의결한 채 끝이 났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