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료의향서’ 국민적 신뢰 얻으려면 통합 등록·관리 시스템 우선

‘사전의료의향서’ 국민적 신뢰 얻으려면 통합 등록·관리 시스템 우선

기사승인 2015-08-22 08:32:55

[쿠키뉴스=김단비 기자] 17평 남짓의 좁은 사무실. 이곳에 평균 연령 60세의 여성들이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전화 상담을 받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사단법인 사무실은 노후에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져야할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해 상담해주는 곳이다.

◇병문안 중 무의미한 연명치료 목격한 어르신들 상담전화 많아

일반인 누구나 전화 상담을 통해 필요한 내용을 물어보고 원한다면 사전의료의향서를 집 또는 사무실로 받아볼 수 있다. 사무실 한쪽에 내일이면 우체국으로 보내질 우편물들이 가득했다. 모두 사전의료의향서와 그 작성방법이 담긴 우편물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상담 업무뿐 아니라 손수 편지봉투에 사전의료의향서를 넣고 친필로 상담자의 주소를 써서 그들에게 보내준다.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하루 평균 50통의 전화를 받는다. 일반 전화 상담에 비하면 적은 수치지만 단순한 문의 전화가 아니다. 이들이 전화 상담하는 모습을 30분간 지켜봤다. “자식들에게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주기 싫다”며 “정신이 온전할 때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싶다”는 80세 어르신의 전화부터 “부모를 간병하는 것이 너무도 버겁다”는 자녀의 호소 전화까지 저마다 현재의 버거운 삶의 무게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고민을 안고 수화기 너머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자신 혹은 가족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사회가 터부시하는 죽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이곳에서 무료 상담을 해주고 있는 유명숙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는 “전화 상담의 대부분이 어르신이다. 이 중에는 잘 안 들려 큰소리를 말해 달라고 할 정도로 노쇠한 어르신도 계신다. 전화한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공통적으로 병원에 입원해 불필요한 연명치료로 몸이 붓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상황을 목격한 경험들이 있다. 당신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며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해 물어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향서 작성한 사실 모르면 무용지물…통합센터 필요성

한국에도 품격 있는 죽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자신이 회생가능성이 없는 의료상황에서 인공호흡기 의존, 수액주사 등으로 생명을 연장하기만 하는 의료시술을 받지 않겠다고 미리 정해 놓을 수 있는 일명 웰다잉 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지난달 9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에 따르면 성인이면 뇌사, 질병 말기 등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연명의료여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미리 밝혀 놓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고,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 내용에 따라 담당의사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앞에서 보듯 사전의료의향서는 우편이나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작성할 수 있다.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는 현재까지 개인보관이다. 이 경우 작성자가 잃어버렸거나 가족들이 환자가 작성한 사실을 모르면 무용지물이 돼 버린다. 지난 9일 발의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보관됐던 사전의료의향서는 통합된 하나의 전산시스템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병원은 환자의 과거 작성여부를 통합 관리하는 국가기관에 문의해 알아볼 수 있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공동대표는 “사전의료의향서가 분실되거나 가족들이 이 사실을 몰라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웰다잉 법안에는 국립연명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이곳에서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관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kubee08@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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