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가 차선을 바꾸자 한순간 승객들이 휘청거린다. 4호선 사당역 앞에서 경기 수원으로 향하는 전세버스는 45인승 좌석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11명의 승객을 입석으로 더 태웠다. 전세버스는 일반 광역버스와 달리 손잡이가 달려 있지 않아 서서 가는 사람 모두 선반을 부여잡거나 좌석에 기대는 것이 최선이다. 버스 계기판 바늘은 시속 100㎞를 넘어간다. 버스가 코너를 돌자 서 있던 승객들은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쓴다. 정류장 안내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좌석에서 일어난다. 하차벨이 없어 정차 전 기사에게 다가가 내리겠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 조치 후 한시적으로 도입된 전세버스가 여전히 위태롭게 운행되고 있다.
지난 2014년 7월16일, 안전상의 문제로 고속도로 및 고속화도로를 경유하는 광역·직행버스의 입석이 금지됐다. 버스에 탑승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늘자 자연히 교통대란이 발생했고, 경기도와 각 시는 미봉책으로 출·퇴근 시간 광역·직행버스 노선에 전세버스를 투입했다.
시·도의 대책에도 시민들의 불만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같은 해 8월25일 입석 운영을 허용했다.
입석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2년 동안 제시되지 못했다.
현재 경기 남양주·성남·수원·오산·용인·하남·화성 등 7개 시에서 서울을 오가는 광역·직행버스 노선에 98대의 전세버스가 투입돼 운행 중이다.
증차된 전세버스, 손잡이·하차벨 등 안전장치 없어
전세버스에는 손잡이와 하차벨 등 승객 안전을 위한 장치가 전무하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시내버스, 농어촌버스, 마을버스, 일반형시외버스 등에는 입석 승객을 위한 손잡이와 하차벨을 설치해야 한다.
현재 노선 운영에 투입된 전세버스는 일반 버스처럼 승객을 태워 운행하지만, 이러한 설치의무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전세버스에 탄 입석 승객들은 위태롭게 차량 내 선반을 잡거나 좌석에 기대어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차벨이 없어 버스가 운행 중인 상태에서 승객들이 좌석을 벗어나는 일도 빈번하다. 이는 곧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광역버스 운전사는 10년 경력 베테랑인데…전세버스 기사는?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짧은 실무 경력과 격무 역시 문제다.
광역·직행버스 경우 보통 버스 운전경력 5년에서 1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 운행한다. 그러나 전세버스는 대형버스 운전면허만 있다면 경력이 없어도 취업이 가능하다. 즉, 면허를 딴 당일에도 바로 버스 운행에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운수업체 관계자는 “광역·직행 등 좌석버스는 시내버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운행되다 보니 경력자나 검증된 사람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우리 회사의 경우, 시내버스 경력을 쌓아야만 좌석버스 운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운수업체에 종사하는 한모(56)씨는 “전세버스는 경력이 없는 사람이 운전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전세버스 업계는 현재 인력난을 겪고 있어 경력이 없어도 쉽게 채용된다”고 설명했다.
증차 투입된 전세버스 운전사는 출·퇴근 외 시간에 다른 일정을 함께 소화할 수 있다.
지난달 17일 강원 평창군 봉평면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41명의 사상자를 낸 추돌사고의 경우,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기사 방모(57)씨는 제대로 된 휴식 시간 없이 버스를 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증차 배치에 투입된 한 전세버스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는 일이 없어 기사들이 출·퇴근 시간에만 전세버스를 운행하고 있다”면서 “소풍, 야유회 등 일정이 많은 가을 성수기가 되면 전세버스 기사들이 노선 운영과 다른 일정을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버스업체 “한시적 운행이라 안전장치 구비 어려워”…시민들 “불편하지 않다”
전세버스업체 측은 안전장치 미비 등 문제점 지적에 난색을 표했다.
광역버스 노선에 버스 투입 계약을 맺은 전세버스업체의 이모(50) 이사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전세버스 증차 운영은 한시적”이라면서 “손잡이나 하차벨 등 안전장치를 갖추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칙적으로는 입석을 배제하고 있으나 시민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입석을 허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무경력자를 뽑아 채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이사는 “우리 회사는 버스·화물차 운전 경력 1년 이상의 지원자만 뽑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한 달에 1번 자체적으로 운행의 문제점과 교통법규·시행령이 바뀐 부분에 대해 한 시간 정도씩 기사 안전 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광역·직행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대부분 “안전보다 편의를 택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용인 수지에서 서울 역삼까지 통근하는 황모(26·여)씨는 “조금 위험하더라도 서서 버스를 타겠다”며 “버스 한 대 놓치면 20분을 기다려야 해 출근 시간에 늦을 염려가 크다”고 토로했다.
수원에 거주하는 김모(29)씨는 “서서 가는 것이 별로 위험하지 않아 보인다”며 “전세버스가 일반 버스보다 좌석도 넓고 쾌적해서 좋다”고 이야기했다.
시·도·버스회사 “전세버스 관리 우리 권한 아냐”…전문가 “지자체가 관리해야”
시·도 관계자는 증차된 전세버스에 대한 관리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복수의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관계자는 “증차된 전세버스는 입석 없이 운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서 “차량이나 기사에 대한 관리는 운수업체나 전세업체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세버스 업체와 증차 계약을 맺은 운수업체 측은 “현재 임시로 투입된 전세버스에 대한 관리는 각 전세버스 업체에서 하고 있다”며 “우리 업체는 ‘공동운수협정’을 맺어 계약한 것뿐”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는 증차 투입된 전세버스에 대한 지자체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교통대 진장원 교수는 “전세버스가 대중교통 노선에 투입된 이상 해당 지자체가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자체에서 전세버스 기사에 대한 실질적 안전 교육을 위해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안전장치 없이 노선 운행 중인 전세버스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손잡이, 하차벨 없는 전세버스를 입석이 가능한 노선버스로 운행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며 “외국의 경우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다음 승객이 좌석에서 일어나는 것이 권고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시민들이 익숙해져서 안전장치가 없는 전세버스의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며 “불완전한 시스템이 모여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