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동 권리 보장”vs“부작용 우려”…‘보편적 출생신고’ 둘러싼 온도차 극명

[기획] “아동 권리 보장”vs“부작용 우려”…‘보편적 출생신고’ 둘러싼 온도차 극명

기사승인 2016-09-01 23:52:47 업데이트 2016-09-02 08:04:32

[쿠키뉴스=이소연 기자] 아동인권단체와 의사단체 사이에서 ‘보편적 출생신고제’를 두고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보편적 출생신고제는 아동의 출생을 목격한 병원, 조산사 등이 의무적으로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는 제도다. 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해 병원에서 즉각 출생신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염려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 광주 10남매·난민 자녀…현행 제도로는 사각지대 못 막아

현재 출생신고는 부모가 아동의 출생 30일 이내에 읍·면·동 주민센터를 직접 방문해 출생 사실을 알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정부기관은 아동의 출생 사실 자체를 알 길이 없다. 출생이 등록되지 않은 아동은 교육·보건 등 최소한의 국가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 한다. 

지난 4월 세상에 알려진 ‘광주 10남매 사건’이 대표적이다. 남매의 부모는 10여 년간 자녀 4명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1998년에 출생한 다섯째부터 2004년에 태어난 여덟째까지 네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는 지난해 4월에야 이뤄졌다. 부모가 받은 처벌은 과태료 20만원에 불과했다. 그동안 다섯째 자녀는 17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출생신고의 대상을 ‘한국 국적’으로만 한정한 점도 문제다. 본국에서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이주한 난민 자녀의 경우, 본국과 한국 어느 곳에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난민 자녀 A군(12)은 의무교육 규정에 따라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신분을 증명할 공적 문서가 없다. 이로 인해 여행자 보험 가입이 불가능해 정규 수업 과정인 현장학습·수학여행 등에서 배제됐다. 

안산이주아동청소년지원센터 관계자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난민 자녀들은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난민 부모는 아이가 아파도 해열 진통제를 주며 참으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아동인권단체 “출생신고, 부모에게는 의무 아동에게는 권리” 

최근 부모에게 출생신고를 일임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한국유니세프위원회·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주민공익지원센터 감사와 동행 등 13개 국내 아동·인권단체로 구성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지난 6월부터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한국 정부에 자동적으로 출생신고 되도록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신고제 확립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현행 제도로는 출생신고에서 누락돼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아동의 권리를 위해 보편적 출생신고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민공익지원센터 감사와 동행의 김진 외국법자문사는 “현재까지도 출생신고를 빠트려 발견되지 않은 아동이 있을 수 있다”며 “해외와 같이 보편적 출생신고가 이뤄진다면 드러나지 않은 아동학대와 불법적인 아동 매매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 호주 등 영미권 국가들은 자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보편적 출생신고를 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병원, 조산사, 아동이 출산된 장소의 소유자 등에게 출생신고를 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특히 호주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이 부모 중 한 명이 해당 국가 국적을 가져야 자녀에게도 국적을 제공하는 ‘속인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출생신고는 국적과 상관없이 이뤄진다.   

◇ 의사단체 “출생신고는 부모 책임”…미혼모시설 “병원 꺼려 위험 노출될 수도”

반면 전국의사총연합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의사단체는 보편적 출생신고제도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의료기관에 출생신고를 맡기는 것은 마땅히 부모가 해야 할 책임을 의사에게 돌리는 일”이라며 “출생신고를 원치 않는 부모들이 출산을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시도하게 돼 산모와 태아 모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혼모복지시설의 관계자도 “출생신고가 강제될 경우, 미혼모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입양특례법 이후 베이비박스의 이용이 증가한 것처럼 보편적 출생신고제도가 의료기관을 기피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입양 아동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신원 노출을 꺼리는 미혼부·모들이 아동을 유기하는 사례가 늘었다. 부득이하게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베이비박스’ 이용 건수는 2012년 79건에서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인 2013년 252건으로 증가했다.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전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현재 혼외임신이 몇만 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다면, 의료기관이 비용과 책임을 떠맡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내년 하반기 인터넷 출생신고 시스템 구축 예정…“환영” vs “반발”

앞으로 출생신고제 개선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30일 발표된 2017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인터넷 출생신고 시스템을 구축해 내년 하반기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주민센터를 방문하지 않고도 분만병원 등에서 출생신고가 가능해진다. 

이에 대해 아동인권단체 관계자는 “병원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출생증명서를 송부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보다 수월하게 보편적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며 “제도와 설비가 갖춰지면 일선 병원에서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측은 “분만병원과 정부 사이 전혀 논의된 것이 없다”며 “병원이 져야 할 책임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토로했다.

두 단체의 시선이 엇갈리는 가운데 정부는 “이제 준비 단계일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인터넷 출생신고 시스템 마련을 준비하고 있는 대법원과 행정자치부는 “예산만 배정됐을 뿐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시스템이 구축된다 하더라도 현행 법령이 바뀌지 않는 이상 출생신고 의무자는 부모”라고 선을 그었다.    

◇ 전문가 “인권·의료서비스 측면에서 모든 아동 보호돼야…미혼모 위한 보완장치 필요” 

전문가들은 원활한 의료서비스 지원과 아동 인권 측면에서 보편적 출생신고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8년 ‘신생아 출생정보 제공 전산체계 구축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박정한 명예교수는 “국가가 아동의 출생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산모와 아동에 대한 의료 지원이 가장 필요한 시기는 출산 직후이기에 국가가 제때 지원하려면 즉각적인 출생신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행 출생증명서에 오기와 누락이 횡행함을 지적하며 “보편적 출생신고제를 통해 정확한 데이터가 제공되면, 국가가 국민의 평생건강관리체계를 구축해 전염병 등에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편적 출생신고제의 도입을 위해서 법령 개정이 최우선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상용 교수는 “보편적 출생신고제는 모든 아동의 권리를 위해 마땅히 필요한 제도”라면서 “실질적인 시행을 위해서는 온라인 시스템 구축보다 법령의 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일에서는 산모가 익명출산을 원할 시 신상기록을 남기지만 이는 공문서에 게재되지 않는다”며 “미혼모 등을 보호할 제도적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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