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명의 조카와 보내는 특별한 추석…봉사 아닌 ‘힐링’이죠”

“48명의 조카와 보내는 특별한 추석…봉사 아닌 ‘힐링’이죠”

기사승인 2016-09-13 14:13:36 업데이트 2016-09-14 17:18:54

[쿠키뉴스=이소연 기자] “돌봐주던 봉사자가 없으면 아이들이 더 보채고, 손길을 받지 못해 평소보다 풀이 죽어요”

영·유아를 보호하고 있는 아동복지지시설은 긴 추석 연휴가 고달프다. 명절 기간, 도움을 주던 봉사자들의 발길이 줄기 때문이다. 14일부터 오는 18일까지 5일간 이어지는 휴일에 복지시설 관계자는 한숨이 늘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국내입양전문기관 성가정입양원(입양원)에는 입양 대기 아동 48명이 머물고 있다. 현재 입소한 아동의 연령은 생후 10일부터 만 서너 살까지. 누군가의 보살핌이 꼭 필요한 나이다. 보육교사들이 연휴를 반납하고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봉사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에 봉사자들이 평소처럼 입양원을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기존 봉사자 중 연휴 기간 도움을 줄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지만, 신청란은 대부분 공란으로 남는다.    

추석 연휴 쓸쓸해진 입양원에 따스한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10일 입양원에서 만난 박수예(30·여)씨는 그중 한 사람이다. 

◇ “명절 기간, 보살핌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박씨와 입양원의 인연은 2년 전 시작됐다. 입양원에서 아이들을 보살필 손길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주 토요일 오전 봉사활동을 진행하게 됐다.

주말봉사자인 박씨가 명절마다 입양원을 찾게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해 설 연휴 기간 봉사자가 부족하다는 말에 박씨는 망설임 없이 자원했다. 이후의 명절도 입양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그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마주한 뒤, 명절 봉사를 지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휴 기간 봉사자가 부족해 신청한 시간보다 길게 머무를 때가 있다”며 “이번 추석에도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봉사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더 오랜 시간 아이들과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입양원 관계자에 따르면 평소 입양원을 찾는 봉사자는 하루 평균 50명이다. 그러나 명절 기간에는 하루 채 10명도 되지 않는다. 이번 추석 연휴 5일 동안, 입양원을 찾겠다고 한 봉사자는 31명이었다. 하루 평균 6명꼴이다.  

◇ 입양원의 명절…“평소 보지 못 한 새로운 아이들 모습에 더욱 즐거워” 

입양원에서도 차례상과 음식을 준비하는 등 평범한 명절을 보낸다.

색다른 풍경도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10여명의 아이들이 그 예다. 자녀를 한두 명 두는 것이 일반화된 현재, 가정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행동도 평소와는 다르다. 장난이 심하던 아이가 난생처음 한복을 입고 의젓해진다. 서툴게 추석 음식을 봉사자에게 권하기도 한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한복을 직접 입혀주는 등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며 “평소와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돼 즐겁다”고 밝혔다.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입양원은 입소한 아동을 일정 연령으로 나눠 보살피고 있다. 평소 박씨는 생후 12개월~18개월 사이의 아이들을 돌본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이다. 

봉사자는 본래는 지정된 방을 이동할 수 없지만, 일손이 부족한 명절에는 방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   

그는 “입양원에 있는 모든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것도 명절 봉사만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 “아이들과 함께하며 긍정적인 에너지 얻어…봉사 아닌 힐링”

과거 박씨는 명절 기간 종종 ‘힐링’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입양원 봉사를 시작한 이후, 여행보다 입양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간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 추석,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 쉬었던 것보다 입양원 아이들과 산책하며 도토리를 주웠던 경험이 훨씬 내 삶을 풍성하게 했다”며 웃음 지었다. 

명절을 함께 보내지 않는다며 서운해하던 가족들도 이제는 박씨의 봉사를 전폭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명절이 즐겁다”면서도 “오는 2017년 설에는 아이들이 입양원을 떠나 좋은 부모님과 함께 보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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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