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 심리학] 김윤석의 성희롱 발언, 무지(無知)의 그림자를 드러내다

[이슈 인 심리학] 김윤석의 성희롱 발언, 무지(無知)의 그림자를 드러내다

기사승인 2016-12-06 17:54:49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러므로 정작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우리가 된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워야 한다.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배우 김윤석은 지난 1일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를 소개하는 네이버 V앱 무비토크에 출연했다. 이날 MC 박경림이 “‘좋아요’를 의미하는 하트가 20만을 넘었는데 무엇을 할까요?”라고 묻자 김윤석은 “(함께 출연한 여배우의 무릎) 담요를 내리는 것이 어떠냐”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언어도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폭력의 개념은 변해왔다.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최근에는 심리적 강제력 역시 폭력의 개념에 포함된다. 

대안 의학 박사인 에모토 마사루 박사는 2002년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물’ 대한 실험을 증명했다. 고성능 현미경으로 지름 1㎜의 작은 물 입자를 관찰한 것이다. 약국에서 파는 증류수를 두 개의 스피커 사이에 놨다. 이후 두 종류의 음악을 틀었다. 하나는 클래식 음악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그리고 쇼팽의 ‘이별의 곡’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분노와 반항적인 언어를 담고 있는 시끄러운 음악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클래식을 들려준 물은 아름다운 결정의 형태를 보였지만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준 물은 결정이 깨진 형태였다. 

우리 몸의 70%는 물이다. 즉, 상대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따라 즉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로 몸이다. 몸 전체로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은 상대방의 언어를 기억한다. 

김윤석의 말을 들은 대중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그의 말이 성희롱으로서 불쾌함과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다른 한 부류는 농담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발언을 ‘농담’이라고 여기는 대중은 김윤석이 사적인 자리에서 쓸 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한 ‘실수’를 한 것이라고 치부한다. ‘농담(弄談)’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실수로 던져진 말이 그 대상자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농담의 농(弄)은 ‘실없이 희롱하다’의 뜻이다. 실(實)없다는 것은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영어단어 ‘joke(농담하다)’는 1660년대 만들어졌고, 라틴어인 ‘iocari’에서 생겨났다. ‘재미 삼아 하는 취미(pastime)’라는 의미다. 이는 곧 가장 편할 때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다. 그리고 가장 편할 때 드러나는 것은 본능이다. 가면을 벗은 본래의 인격, 곧 그 사람 자체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915년에 쓴 ‘본능과 그 변천(Instincts and Their Vicissitudes)’에서 “본능이란 마음을 활동하게 하는 도구다. 그것은 본능이 신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격은 영어로 ‘personality’이다. 어원은 라틴어인 ‘가면(persona)’이라는 뜻에서 왔다. 한 사람이 일관되게 쓰고 있는 가면. 가면 자체는 통일성과 시간의 지속성을 통해 자신의 일부가 된다. 결국, 가면을 벗어도 얼굴에는 그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지난 2011년 9월27일 영화 ‘완득이’ 시사회가 열린 서울 왕십리 CGV에서 김윤석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말 안 듣는 배우들과 연기하고 싶다. 재미있고 긴장감도 생기고 표현방식도 다양해지는 것 같다. 대신 사석에서는 말을 안 들으면 안 된다.” 이 말은 자신이 후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본능을 드러낸다. 공적인 자리에서 한 말실수를 사적인 자리에서 풀면 된다는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김윤석은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주말이 끼어 (성희롱 논란 사과가)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며 “한 인터뷰에서 양말 공약이라는 농담으로 시작됐던 게 내 경솔함과 미련함을 거치면서 상당히 불편한 자리를 초래했다. 분노와 불편함을 느끼셨던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깊이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김윤석의 사과 속에는 성희롱 발언의 당사자인 배우 채서진과 박혜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배우 김윤석은 두 딸의 아버지다. 필자도 두 딸의 아빠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말이 ‘실수’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실수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성희롱’이다. 성희롱 발언을 듣는 대상자는 단순히 페미니즘에 사로잡힌 여성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 아내, 딸, 여동생 등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재연(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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