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적은 암이나 세균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건강하던 사람도, 미모를 자랑하던 사람도 세월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될수록 좋은 것도 있다. 발효식품의 경우 오래 묵은 것일수록 숙성되어서 깊은 맛을 낸다. 장맛에 영향을 주는 것이 많지만, 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특히 와인이나 위스키의 경우는 오래된 것일수록 일품으로 친다. 1912년 4월 1일 북대서양의 해저 4천 미터 아래로 당시 세계 최대의 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침몰되었다가, 이후 1985년 해양 탐험가 로버트 발라드(Robert Ballard)박사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배에서 건져낸 와인이 2012년 미국 뉴욕의 경매에서 비싼 값에 낙찰 되었다고 한다. 상징적인 의미가 컸겠지만, 그만큼 오래된 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발효를 통해 좋은 맛을 내는 장이나 와인 위스키와는 달리 커피는 시간에 약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수록 커피의 맛은 나빠진다.
그것은 산소가 커피의 기름(Oil)성분과 만나서 맛을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래된 견과류의 맛이 변하는 것과도 같다.
로스팅 된 커피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맛이 변해가는 과정을 산패라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세계 최초로 네슬레가 커피 포장지에 질소를 주입하는 방식을 도입한 이후 많은 기업이 이를 따라 하고 있다. 미국의 스타벅스 공장에서 로스팅 된 원두도 질소포장을 한 후에 수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급속한 변화를 막을 뿐 본질적인 대책은 되지 않는다.
오래되어 산패된 커피가 내는 맛은 담배의 찌든 냄새와 흡사하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그런 맛이 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오래된 커피원두를 사용한 때문이다. 이런 경우 설탕을 많이 넣거나 라떼(Latte)음료로 마시면 적당히 마실 만 해진다. 하지만 맛도 좋지 않고 건강에는 더욱 좋지 않다.
그렇다면 커피는 언제까지 마시는 것이 가장 좋은 맛과 향을 낼까? 커피를 볶은 후 보름 안에 마시는 것을 권한다. 커피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밀봉해서 서늘한 곳에 보관할 경우에는 한 달 정도가 마지노선이다. 그 이후에는 시간에 따라 급속히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오래될수록 좋은 맛을 내는 것을 변화라고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좋지 않은 맛을 내는 것을 변질이라고 한다. 변화의 가치는 무궁하다. 하지만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도 변질되면 쓰레기로 버려질 뿐이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변질되면 최악이 된다. 성경은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데없어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것’이라고 말씀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도 맛과 향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변질되고 있는가?”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