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지난해 11월 대구 서문시장에서 발생했던 화재는 40여시간의 작업 뒤에야 완전 진화됐다. 큰 불은 잡았지만 곳곳에서 되살아나는 잔불 때문에 그 만큼의 시간이 추가로 소요됐다.
진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되살아나고 있다. 겨울 철새 북상경로인 서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악몽’이 재연될 조짐이다.
지난 24일 AI 양성반응이 나왔던 고창 아산면 육용오리 사육농가에 대한 정밀검사를 진행한 결과 H5N8형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바이러스는 2014년 1938만여 마리를 살처분했던 최악의 AI 바이러스다.
H5N8형 AI는 잠복기간이 길고 증상이 늦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어 예찰이나 도축 전 검사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역당국은 겨우내 한반도 남부에서 지내던 철새들이 북상하면서 남긴 분변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북 순창과 전북 고창, 충남 홍성 등 철새 북상 경로와 AI 발생 지역이 일치한다. 정부는 대표적인 철새인 가창오리가 한반도를 떠나는 3월 중순까지 고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철새로 인한 천재(天災)로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4년 발생했던 H5N8형 AI의 경우 철새가 떠난 7월 중순까지 계속됐다. 당시 방역당국은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을 사람과 차량에 의한 수평전파로 분석하기도 했다.
AI 의심신고가 접수된 전북 익산의 하림 위탁농장의 경우도 단순히 한 농장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 잠복기간이 긴 H5N8형 바이러스인 탓에 이미 출하됐거나 각 농장을 이동했던 사람과 차량을 통해 전파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역당국은 당초 해남과 청양, 고창, 강진 등 4개 시군의 191개 사육농가에 대해서 7일간 이동 중비 조치를 내렸다. 이후 0시를 기준으로 전북과 전남, 광주지역까지 확대했지만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H5N8형 바이러스가 철새 이동에 의한 사실을 파악했을 때 이른바 ‘서해안 벨트’에 포함된 농가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앞섰으면 잔불은 그저 잔불로 그쳤을 수 있다.
인력적인 문제와 조사 범위, 예산 등 산재해있는 문제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한 탁상공론일 수 있다. 하지만 올 겨울 H5N6형에 이은 H5N8형 AI 유행으로 총 3292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정부가 부담해야하는 예산이 많게는 4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이다.
잔불이 잔불일 때 진화하는 것, 그것이 정부가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