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장애를 장승으로 승화시킨 ‘뭐 만들까 공방’의 장승공예가 김윤숙 씨에 이어 수년째 사랑으로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휠체어 건축가 흰돌하우징 대표 박철용 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장애를 입게 되면 예전의 인간관계가 대부분 정리가 돼요
“장애를 입게 되면 예전의 인간관계가 대부분 정리가 돼요. 다치기 전에는 나이대가 맞아야 친구가 되었지만, 이제는 나이차와 관계없이 장애를 입었다는 동질성 때문에 장애가 있으면 모두 친구가 돼요. 장애인 동호회에 나가면서 만남의 폭이 넓어졌어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육체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행복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봉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흰돌하우징 대표 박철용
휠체어 탄 사람이 건축 일을 할 수 있어요?
“견적을 내러 갔다가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대뜸 ‘당신이 할 일이 아니잖아’ 그러는 거예요. 휠체어 탄 사람이 건축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 싶겠지만 제가 견적을 내면 우리 회사 시공팀이 그대로 하면 되거든요. 제가 기술적으로 실력이 괜찮은 편이기도 하고요.”
흰돌하우징 대표 박철용 씨는 집 짓는 일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건축 현장에서 다쳤지만 다시 돌아왔을 만큼 건축업을 평생의 천직으로 알고 있다. 2008년 그는 서울의 한 재건축 현장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직선으로 쭉 나가던 철용 씨의 삶이 꺾인 그래프가 되어 방향이 바뀌게 된 사건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그대로 떨어져 버렸어요
“지붕을 철거할 때에는 순서대로 하나씩 철거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누가 볼트를 전부 다 분해해 놓았던 거예요. 올라가서 점검하다가 그걸 발견했을 때는 늦었어요. 직원들은 다 퇴근해 버렸지, 아차 하는 순간에 그대로 떨어져 버렸어요.”
안전을 중시하는 건축현장에서 사전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은 여파는 엄청났다. 추락사고는 3m 높이에서 일어났지만 하필 허리가 시멘트덩어리에 곧장 부딪혀 10시간의 대수술을 마치고 났더니 영영 걷지 못하게 되었다.
“건축가로 활동적으로 움직였었는데 처음엔 더 이상 집짓기, 인테리어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 대소변을 자연스럽게 해결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해결해야 하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건데, 그런 위축감도 컸고요.”
다시 건축현장으로 돌아오다
1년여 고통스러운 재활 과정 끝에 철용 씨는 다시 건축현장으로 돌아왔다. 산재 보상금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건축일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고, 60여 채의 전원주택을 지은 경험이 있어서 제일 만만했다.
“제가 해봐서 알지만 휠체어 탔다고 공사 상담하고 견적 내고 건축 자재 조립하는 것쯤 못하지 않거든요. 일을 하다보면 신체적인 통증도 잊어버리게 되고 장애로 인한 이런저런 잡생각도 안 하게 되니까 더 열심히 일하게 돼요.”
높은 계단, 장애인화장실, 자동차 주차는 늘 골칫거리
하지만 높은 계단, 장애인화장실, 자동차 주차는 늘 골칫거리였다. 경사로 하나 때문에 관공서 출입에 곤란을 겪거나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 1시간을 헤매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됐다.
얌체족들이 차를 대놓은 장애인주차장과 간신히 찾아낸 장애인화장실이 문이 잠겨 있거나 청소도구가 쌓여있을 때면 난감하기만 하다.
“어찌됐건 저는 불편하더라도 계속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런 곳을 자꾸 다녀야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계단이 있으면 불편 하구나’하고 인식개선이 되지 않겠어요.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돌아다니지 않으면 결코 개선되지 않을 거예요.”
장애인이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장애인이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작은 문턱 때문에 평생 집안에서 갇혀 사는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기만 해도 삶의 질이 바뀐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사랑의 집수리 사업을 시작했다.
“수년간 서울 경기 지역 주택 100여 곳에 경사로 만들기, 문턱 제거, 화장실과 보일러, 수도 수리 봉사를 했어요. 처음엔 신청자가 없어서 자비로 팸플릿을 만들고 지역 케이블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지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이동의 편의성을 조금이라도 해결해나가고 싶어요.” jun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