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인도 ‘부모 동의’ 필수…청년 가구분리 시범사업의 모순 [세대분리법을 부탁해②]

[단독] 성인도 ‘부모 동의’ 필수…청년 가구분리 시범사업의 모순 [세대분리법을 부탁해②]

청년 가구분리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 전수조사
부모 동의·지역 한계에 ‘발목’
본사업 전환 불발 시 내년 8월 분리지급 중단
“지금껏 발굴 못한 이유 분석해 본사업 전환해야”

기사승인 2025-12-29 06:06:04 업데이트 2025-12-30 10:04:29
정부가 지난 10월부터 시행한 ‘기초생활보장제도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에 4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했다. 인천 계양구와 전라남도 해남군은 2모형만 선정돼 1모형은 시행하지 않고 있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복지 지원이 필요한 만 30세 미만 청년의 자립을 돕는 취지로 출발한 정부의 시범사업에서 일부 개선 과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이어도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고, 청년 인구가 적은 지역을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다. 

29일 쿠키뉴스 취재 결과, ‘기초생활보장제도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에서 생계급여를 받고 있는 수급가구 부모와 떨어져 사는 20대 자녀가 가구 분리를 하려면 ‘부모 동의’를 필수로 받아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생계의 어려움을 혼자 감당하는 청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시범사업의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가구 분리를 위해 성인이어도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발표하지 않았다. 부모와 따로 사는 20대 자녀에게 생계급여를 지원하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고자 시작한 사업이지만, 부모 동의를 받지 못한 청년들은 또 한 번 제도의 장벽에 좌절하게 된 것이다.

이번 시범사업은 부모와 거주지가 다른 20대 청년이 개별 가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사례다. 현행 세대분리 제도는 30세 미만 청년이 결혼, 일정 소득(올해 기준 월 95만6805원)을 만족하지 못하면 자신의 의지로 부모와 세대분리를 할 수 없게 제한하고 있다. 그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부모와 독립된 가구로 인정받지 못해 복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부는 지난 10월부터 4개 지역(인천 계양구, 대구 달서구, 강원 철원군, 전남 해남군)에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비수급 가구 출신 청년은 가족관계가 단절됐다는 점을 증명하면 개별가구로 분리(모형2)될 수 있고, 기존 수급 가구 자녀도 가구 분리를 통해 생계급여를 따로 지급(모형1) 받을 수 있게 했다. 

실제 2개월 동안 진행 중인 시범사업에서 자녀의 가구 분리를 동의하지 않는 수급 가구 부모가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 달서구의 대상 82가구 중 절반 수준인 47가구만 신청에 동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 철원군도 지원 대상 3가구 모두 신청을 망설이고 있다. 자녀가 독립 가구로 분리되면 전체 가구에 지급되는 금액은 늘어나지만, 정작 부모 계좌로 들어오던 생계급여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령 최대 160만원의 생계급여를 받던 3인 가구의 경우, 자녀가 가구를 분리한다면 부모는 2인 가구 기준 최대 125만원, 자녀는 1인 가구 기준 최대 76만원을 각각 지급받는다. 총 급여액은 최대 40만원가량 늘어나지만, 가구주(부모) 계좌로 입금되는 돈은 35만원가량 줄어든다.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지자체는 ‘부모 동의’를 전제로 한 제도 설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빈곤 청년가구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인데, 부모 가구의 동의를 받아야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은 민원 불편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면서 “부모가구도 생활이 넉넉지 못한 상태에서 최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2월 시범사업이 종료되고 본 사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일부 청년들에 대한 복지 지원이 끊길 가능성이 있는 점도 문제다. 수급가구 출신 청년의 경우 내년 8월까지만 한시적으로 분리지급이 유지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본지에 “8월까지 본 사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다시 기존처럼 가구주에게만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밝혔다. 다만 개별 가구 인정을 받은 비수급가구 출신 청년은 시범사업 종료와 상관없이 수급 자격이 유지된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수급 지위와 소득 수준에 따라 청년의 복지 접근권이 좌우되게 만든 구조를 문제 삼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부모가 수급자인 경우에만 분리를 허용하는 식으로 ‘작은 구멍’만 내놓은 상태”라며 “부모 동의가 없으면 아무리 가난해도 청년이 제도 밖에 남는 구조를 그대로 둔 것이다. 청년의 자립 권리를 부모의 동의 여부에 종속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전경. 사진=박효상 기자

청년 없는 지역에서 시범사업 괜찮나…“효과성 분석 어려워”

생계급여를 수급받는 가구가 아닌 청년(모형 2)의 경우 일단 이들이 사회보장 체계에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가정 내 폭력, 방임, 경제적 착취, 학대 등의 이유로 부모와 물리적·경제적·정서적 단절을 한 청년들이 대상이다. 부모가 생계급여를 받지 않아도, 시범사업을 통해 청년이 가족관계 단절을 입증하면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집 밖으로 나온 청년도 자립할 수 있도록 보호한다는 점에서 가구 단위 복지제도의 한계를 일부 보완하는 시도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가구분리를 신청한 비수급가구 청년 수가 적다는 점이다. 11월 말~12월 기준 4개 지역에서 비수급가구 청년의 가구 분리 신청은 인천 계양구 1건에 불과했다. 전남 해남군에서는 2명 사례를 발굴 중이며, 나머지 지자체의 신청 자체가 없었다. 수급가구 청년의 경우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으로 대상 청년을 파악할 수 있지만, 비수급가구 청년은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참여 지자체 절반이 청년 인구가 적은 ‘농촌’인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인구 급감 지역인 강원 철원군, 전남 해남군은 주소지를 둔 청년 자체가 적다. 강원 철원군청 관계자는 “인구 소멸 지역인 농촌에 대학교,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이 유입될 만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전남 해남군 역시 “농어촌 지역 특성상 청년이 많지 않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다른 지역엔 가구분리가 당장 필요한 비수급가구 청년들이 많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별바라기(인천 청소년 자립지원관) 관계자는 “위기 청소년의 가구분리 신청을 돕기 위해 동사무소에 동행하고 있다”며 “서류 입증이 어려워 행정복지센터를 3~4번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대상 지역이 아닌 곳에선 여전히 가족관계 단절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시범사업이 본 사업으로 전환되면 별바라기 내 위기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보호를 받아보자고 적극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범사업은 본 사업으로 가기 위한 검증 단계다. 하지만 효과성을 분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적은 지역을 선정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시범사업을 보다 발전시켜 서울시, 광역 지자체를 포함해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신청건수로는 시범사업 효과성을 분석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복지부는 “신청 건수가 본사업 전환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사례가 많아야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내년 초 지차체 회의를 열어 홍보·사례 발굴 현황을 공유하고, 추가 발굴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시범사업을 신청한 청년들의 숫자보다 청년들이 사각지대에 존재했던 원인 분석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가정 청년들의 모임 ‘궤도이탈’ 등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282북스의 강미선 대표는 “가구분리를 신청했지만, 떨어진 사례도 분명 있을 것”이라며 “이번 시범사업에서 중요한 건 가구 분리를 신청해도 통과하지 못한 청년이 누구이며, 지금까지 왜 발굴되지 않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범사업이 일회성 행정 실험으로 그치지 않고, 제도 검증과 입법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재은 청년연구단체 스페셜스페이스 대표는 “이번 시범사업은 제도의 필요성을 가늠해 보는 과정”이라며 “입법 근거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기록·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촘촘한 실효성 평가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주 작은 변화다. 지난 10월 정부가 ‘청년 가구분리 모의적용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가족과 단절된 20대 청년도 자립해 복지 지원을 받을 방법이 생겼다. 지난해 쿠키뉴스의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 보도 이후 생긴 결과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30여 년간 공고했던 ‘가족 중심’ 복지 체계에 균열이 났다. 청년도 독립된 권리 주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금 시범사업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올바르게 제도화될 수 있는가. 쿠키뉴스가 후속 취재를 통해 변화의 순간을 기록했다. [편집자 주]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