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배우 손현주는 영화 ‘보통사람’을 위해 2년을 기다렸다. 그동안 드라마, 영화에 잠깐씩 얼굴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시나리오 한 편을 들고 2년을 기다렸다. 긴 기다림 끝에 촬영에 들어간 ‘보통사람’은 지난 23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공작’이라는 제목은 ‘보통사람’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1970년대였던 시대 배경도 1980년대로 바뀌었다. 개봉 직전엔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났다. 지난 17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손현주는 영화가 개봉되기까지의 과정을 천천히 설명했다.
“처음에 김봉한 감독이 ‘공작’이라는 시나리오를 줬어요. 시대 배경은 1970년대였고 캐스팅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당시 김봉한 감독과 PD가 단 둘이 상암동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애처로워서 기다렸어요. 80년대로 배경을 바꿨지만 여전히 투자 받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많이 늦어졌죠. 국가 지원금도 못 받고 클라우드 펀딩을 했어요.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갈 수는 없잖아요. 막상 기다리는 시간은 금방 갔어요. 중간에 카메오 출연도 많이 했고요.”
‘보통사람’은 1987년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 닥치기 직전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매주 광화문 광장에 촛불 행진이 이어졌던 2017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1987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현주는 ‘보통사람’이 1980년대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1970~80년대가 2017년과 맞닿아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보통사람’이 80년대를 대변하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 시대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줄 뿐이죠. 처음 7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시나리오는 지금보다 정치색이 더 강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80년대로 시대 배경이 바뀌면서 가족 중심의 이야기가 많이 부각됐죠. 정치적인 이야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저 우리는 차근차근 만들어가려고 했어요. 시간이 많아서 얘기할 시간도 많았거든요.”
인터뷰에서 손현주는 자신이 직접 겪은 80년대에 대해 털어놓았다. 당시 연극과 학생이었던 손현주는 최루탄 냄새를 맡고 다니며 등록금 투쟁을 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먹고 자면서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막걸리를 마셨던 그 시절만의 낭만도 기억하고 있었다. ‘보통사람’도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 찍었다. 하지만 촬영 후 없어진 곳이 많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주로 부산에서 오래 찍었어요. 전부 재건축, 재개발 현장이었죠. 영화 촬영 때문에 그곳만 빼고 다른 곳만 철거되는 상황이었어요. 찍고 나면 바로 철거됐으니까 재촬영도 할 수 없었고요. 한정된 제작비를 충당하기 힘들어서 그런 장소를 찾았다고 들었어요. 되도록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케줄을 잡았죠. 찍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에겐 아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추억으로 남겠죠.”
손현주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보통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해 촬영 내내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하는 순간에도 고민을 거듭하던 손현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며 ‘저항’이라는 답을 내놨다.
“매번 연기를 할 때마다 숙제가 주어지니까 힘들면서도 재밌어요. 이번 영화의 숙제는 ‘보통사람으로 사는 건 뭘까’, ‘보통 사람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였어요. 사실 답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항변할 수 있는 소심한 저항이죠. ‘보통사람’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 피해자 같고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지금까지 ‘보통사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먹먹했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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