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경마장에서 달리는 말들은 눈 앞 밖에 보지 못한다. 차안대(遮眼帶)로 시계가 가려져있기 때문이다. 좁아진 시야로 인해 한 점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 한 점 밖에 집중할 수 없다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AI로 인해 전체 산란계의 36%에 달하는 2518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공급이 막히면서 30개 들이 한 판 가격은 일선 도매점에서 1만3000원까지 치솟았다. 불과 1년 전 3000~4000원이었던 가격이 네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정부가 AI 여파로 인한 계란값 상승을 잠재우기 위해 선택한 수는 ‘수입’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지난 1월 미국과 스페인 등에서 무관세 계란 수입을 진행한 이후 19일 만에 가격 상승세가 꺾이는 등 확실한 효과를 봤다. 일각에서는 수입 계란이 풀리면서 중간유통상 등이 묶어뒀던 물량을 풀면서 가격이 내려갔다고 보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만인 3월 계란 가격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 학기로 인한 급식과 부활절 등으로 수요가 증가한데다 미국과 스페인에서 발생한 AI로 수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호주산 갈색 계란 총 41만개를 나눠서 들여오기로 했다. 그러나 호주산 계란의 현지 가격은 미국산보다 10% 비싼 만큼 관련업계에서는 유통마진 등이 적용될 경우 한 판 기준 현재 국내 계란 소비자가와 비슷한 8000~9000원선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41만개가 한 번에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13~23만개씩 나눠 들어오는 만큼 계란 가격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6월초 수입을 추진하고 있는 태국산 신선란도 의문점이 많다. 2008년 태국이 AI 청정화를 선언한 이후 일부 열처리 가공 제품만 들여왔을 뿐 신선란이 수입된 적은 없다. 여기에 태국 주변국이 상시 AI 발생국인 만큼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수입이라는 한 점에 집중하는 동안 국내 양계농가 회복은 더뎌지고 있다. 현재까지 AI 발생한 산란계와 산란종계 농장 160여곳 중 병아리가 입식된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AI 확산방지를 이유로 이동제한 해제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검사와 분변검사, 입식 시험 등에 40일에서 많게는 60일이 걸리는 만큼, 지금 당장 준비를 시작하더라도 5월 말 경에야 입식이 가능하다. 또 입식된 병아리가 생산까지 150일 가량 소요돼 실질적인 계란 출하는 10월 이후로 미뤄지게 된다. 그 동안 계란 가격을 잡기 위해서는 결국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정부는 하루 빨리 차안대를 풀어야 한다.